남동생과 어떻게 첫인사를 나눴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25개월 차이로 태어났으니깐 동생이랑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둘 다 말 못 하는 아가들이었다. ‘안녕!’하며 손 흔들지는 않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인사하지 않았을까? 기억이 나질 않으니 추측할 수밖에.
초등학생 시절, 학교가 파하면 동생과 나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동네 친구들과 놀기 바빴다. 어느 날은 112동 앞에서 한 발 뛰기, 고무줄, 얼음 땡. 어느 날은 105동 앞 놀이터에서 소꿉놀이, 숨바꼭질. 물총놀이. 어느 겨울날은 맞은편 아파트 아이들과 편 갈라 눈싸움. 놀아도 놀아도 부족하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저녁 먹을 시간까지 놀다 보면, 어느덧 11층 베란다에서 엄마의 외침이 들려왔다.
“들어와 저녁밥 먹어!!!”
그럼 동생이랑 들어가 저녁밥을 먹고 씻고 거실에서 또 놀다가 지쳐서 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동생은 단짝 친구 같은 존재였다.
물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싸우기도 했다. 그중 가장 큰 싸움은 1996년 12월 31일에서 1997년 1월 1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일어났다. 12월 마지막 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명절 때는 특별히 더 놀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으니 겸사겸사 밤을 새(놀)우자고 했다. 슈퍼마리오 팩 게임도 하고 만화책도 보고 이것저것 하다가 오목을 시작했다. 깔깔거리며 시작했지만, 승패가 갈리니 슬슬 분위기가 험해졌다. 이긴 사람은 진 사람을 놀리고, 진 사람은 이긴 사람한테 놀리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다가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말싸움은, 결국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감정이 격해진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쳐들어가 물건들을 바닥에 내던졌다. 나는 동생 방에서 책들(나름 내던져도 덜 망가질 것 같은)을 내 던지고 있었는데 내 방에선 별별 것들이 내동냉이쳐지는 소리가 났다. 순간, 온몸이 불붙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야!!!!! 그만 안 해!”
내 물건들을 산산조각 내는 동생을 바닥에 눕혀버리고는 위에 올라타 아래 방향으로 마구 주먹질을 해댔고, 동생도 위 방향으로 주먹을 마구 휘갈겼다. 그러다가 한 바퀴 굴러서 내가 아래, 동생이 위. 또 구르고 또 구르고. 그러니까 우리는, 새벽 2시에 불붙은 굴렁쇠처럼 굴러다니며 툭탁거렸다. 쌈박질 소리에 잠이 깬 엄마는, 엎드려뻗쳐 자세를 하게 한 뒤 구둣주걱으로 엉덩이를 때렸다. 동생과 나는 분을 채 삼키지 못하고, 각자의 방으로 격리되었다.
평소에는 싸워도, 자고 일어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실실거리며 잘 놀았는데 이번엔 달랐다. 1월 1일 아침 일찍 외할머니댁에 가야 해서 6시에 기상했는데, 각자의 방으로 격리된 후 3시간밖에 지나질 않아 새벽의 격투가 생생하게 기억나는 상황이었다. 분도 덜 풀리고, 얼굴 부기도 덜 풀리고 말이다. 우리는 그날 서로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하루를 모르는 사람처럼 보내자, 그다음 하루도 모르는 사람처럼 보내게 되었다. 그다음 하루도 그다음 하루도.
그렇게, 일 년 동안이나 모르는 사람처럼 지냈다. 한집에 살면서 쳐다보지도 않고 대화도 하지 않았다. 둘 다 자존심이 센 편이고, 14살 16살 사춘기 때니 쓸데없는 똥고집 기세가 가세했을 터다. 다투고 난 뒤 며칠 안 가 다시 예전처럼 친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먼저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실은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 몰랐다. 대책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다, 훌쩍 일 년이 지나버린 것이다.
그래도, 일 년 뒤부터는 필요한 말 혹은 엄마가 전하라는 말은 주고받았다. 전화 받아, 문 열어줘, 밥 먹어. 이런 말들...
다행히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나도 동생도 대학생이 된 뒤에는 짧은 대화는 나누게 되었고, 시간이 더 흘러 동생이 결혼한 뒤부터는 속 이야기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예전처럼 단짝 같지는 않더라도 남매 같은 관계는 되었다. 다시 남매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지.
10년 전 짝지를 만나 결혼한 동생은 아이가 둘이다. 두 아이도 누나와 남동생으로 남매다. 조카들이 같이 놀고 있는걸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동생과 친하게 지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1월 1일 그날, 싸우고 나서 내가 첫째답게 먼저 미안하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그날 외할머니댁에 갔을 때, 은근슬쩍 말을 걸어봤다면 어땠을까. 친하게 지냈다면, 더 재미있는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냈을 수도 있었겠다. 많은 추억이 생겼을 수도 있고. 생각할수록, 나와 동생의 뻥 뚫린 과거에 헛헛해진다. 후회되니깐, 현재와 미래에는 잘하고 싶다.
퇴근하여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다 보면 동생이 일하는 곳을 지나치는데 그럴 때마다, ‘쟤가 오늘 밥은 먹고 일하나?’, ‘오늘 힘들게 하는 사람은 없었나?’... 같은 생각들을 한다. 괜히,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싱거운 카톡도 가끔 보낸다. 실은, 다음의 글을 밑에 덧붙이고 싶었지만.
"동생. 엄마가 가끔 하는 옛날이야기 하나가 있어. 내가 3~4살쯤이니깐 아마 너는 1~2살이었겠다. 엄마는 자고 있던 네 머리맡에 나를 앉히고는 동생 깨는지 잘 보라고 부탁(?)하고 집 앞 슈퍼에 뛰어 갔다 오셨다고 해. 그런 부탁을 받으면 나는 가만히 앉아 네가 깨는지 안 깨는지 보고 있었나 봐. 엄마 말을 잘 들으려고 그런 건지, 너를 보호해주고 싶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어.
지금도 너를 보호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깐 아마, 후자이지 않을까?
이제는 모든 것이 나보다 월등하고 강한 너를, 미약하고 어리숙한 내가 보호한다는 게 우습지만.
언젠가 어느 순간, 내 보호가 필요할 때가 온다면 내 방식대로 보호할 참이야. 나 3~4살 때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말이야, 뜬금없지만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인사는 제대로 못 했어도, 마지막 헤어질 때 인사는 끝장나게 멋지게 하자. 이생에 남매로 만난 기념으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