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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y LEE Jan 15. 2023

첫사랑첫사랑

 영화 ‘윤희에게’를 봤을 때, 영화 속 공간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촬영장소는, 겨울이면 눈이 내리고, 쌓이는 북해도 오타루. 그러고보니 고등학교때 비디오 테입이 늘어질 정도로 돌려봤던 영화 '러브레터' 촬영지도 오타루였다. 언젠가는 가봐야겠다 마음 먹었는데, 아는 작가님이 카페 쵸비챠(영화 윤희에게 에서 마사코가 운영하는 카페)에 다녀온 뒤 쓴 일기를 읽게 되었을 때. 결심했다. 가자! 가장 빨리 갈 수 있을 때, 당장!   


 1월 초, 6일 일정으로 북해도행 왕복 비행기표를 샀다. 북해도로 떠나기 전, 고등학교 때 눈물콧물 절절 흘리며 봤던 영화 러브레터와 얼마 전 눈물방울 주르륵 맺혀가며 봤던 영화 윤희에게를 한 번씩 더 보고 가려고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찾던 중, 삿포로를 배경으로 한‘first love 하츠코이’라는 일본 드라마가 연관으로 검색되었다. first love라면 우타다 히까루 노래인 건가. 작품설명을 보니, 정말 그랬다. 


 20대 초 알게 되어 현재까지도 듣는 노래. 20대 초라면 호기심 때문에 다른 나라 노래들을 찾아 듣곤 했던 때였다. 노래가 마음에 들면, CD에 노래 파일을 구워(CD에 파일을 저장한다는 의미입니다) CD플레이어로 노래를 들으며 다녔다. 그렇게 해외 노래들을 찾아 듣다가, 우타다 히까루 라는 일본 가수를 알게 되었다. 


 first love를 처음 들었을 때, 가사가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났다. 목소리 때문이었다. 우타다 히까루의 울림 있는 음색 때문에 슬픈 첫사랑에 대한 내용이겠거니 짐작했던 것 같다. 가사는 굳이 찾아 보지 않았다. 멜로디와 음색만으로 충분한 노래였다. 반복해 듣고, 잊고 지내다가 또 반복해 들었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면 찾아 듣는 노래였다. 


 이 노래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라니, 반가웠다! 거기다가 삿포로가 드라마 배경이기도 하니 주저 없이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하츠코이라는 일본어의 의미는 첫사랑. 드라마 제목이 ‘첫사랑첫사랑’이다. 우타다 히카루가 1999년과 2018년 각각 발매한 ‘first love’와 ‘하츠코이’라는 두 노래를 모티브로 드라마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20년간의 애정의 간극을 잇는 두 노래처럼, 남녀 주인공의 97년 시절부터 22년인 현재까지의 맞물리고 풀어지는 인생 여정을 담은 이야기. 


 첫사랑과 운명이라는 흔한 소재이고, 비현실적으로 우연들이 겹치며, 예측 가능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편이지만. 배우들의 눈빛과 몸짓이 차분했고, 영상미가 단아했고, 배경음악은 풋풋했고, 대사는 은근하게 참신했다. 드라마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조화롭다 생각해, 진부하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97년도에 중학교 3학년이었고 현재는 마흔이 된. 삶 동기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반갑기도 했다. 아무리 다른 나라더라도 또래들간에는 공감되는 경험과 감정이 있는 법! 몰아보는 거 힘들어서 잘하지 못하는데도 눕고 일어서고 스트레칭하며 나흘간 9부작 드라마를 끝냈다. 


 오랜만이다. 이렇게 몰입한 거. 


 이제 마흔에 가까운 성인이 되어버린, 현재의 남녀 주인공은 한번 멈추면 계속 멈추어 있으려는 관성의 법칙처럼, 꿈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산다. 땅에 박힌 바위처럼 우두커니.  그러다가 학창시절 첫사랑이었던 서로와 우연히 재회하면서 차츰차츰 땅 위로 올라서게 된다.  


 첫사랑과 재회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첫사랑과 재회한다는 것은, 그 시절의 자신과 재회했다는 것이다. 그 시절이란 온통 흰 눈으로 뒤덮인 설경같이 넓고 깨끗하여,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는 믿음을 스스로에게 가지고 있던 때다. 자신에게 믿음이 있다는 것은, 자신이 내린 선택 또한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내린 선택을 믿을 수 있다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 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     


 이번 여행에서 꼭 하고 싶은 것은 눈이 쌓여 온통 하얀 공간 속에, 가만히 서 있어 보는 것이다. 그곳에 서면, 설경처럼 넓고 깨끗했던 내 시절과 재회할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발견해낼지도도 모른다. 그럼 나도, 땅 위로 올라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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