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오리 Sep 28. 2024

관계의 마침표가 두려운 나에게

나를 달래 보는 글




최근 수영 센터에서 발렛을 하시던 직원이 바뀌었다. 내가 1년 조금 넘게 수영장을 다니는 동안 발렛 주차를 해주시던 분은 두 번 바뀌었다.



첫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일하시던 분이라고 했다. 퇴근하고 지친 몸을 끌고서 수영장으로 향하면 항상 입구에서 밝게 인사를 해주셨다. 수영장이 내게 주는 맑은 기분을 처음 열어주는 건 그 할아버지였다. 나도 늘 오가며 할아버지와 반갑게 인사했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한 번은 퇴근길에 작은 화분을 사서 가져다 드렸다. 밋밋한 관리실에 두시라고. 늙은 할아버지는 꽤나 애지중지 화분을 돌보시며 내게 종종 식물의 안부를 알려주시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그 할아버지는 사라지고 좀 덜 늙은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카운터에 슬쩍 물어보니 사정이 생겨 그만두셨다며 아쉬워하셨다. 나도 무척이나 아쉬웠다.



두 번째, 덜 늙은 할아버지는 엄청 깍듯한 분이셨다.

할아버지는 족히 40살은 어릴 내게 늘 허리를 숙여 인사하셨다. 그러면 나도 질세라 얼른 그분보다 더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초여름날, 센터에 들어가면서 관리실을 힐끗 보니 내가 두었던 화분이 말라죽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크게 개의치 않으려 했지만 다음날 괜히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가며 할아버지한테 말했다. '할아버지 저 화분 물 좀 줘야 할 것 같아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아이스크림을 뜯으며 대답했다. '이거 이미 다 죽은 것 같은데요~' 나는 웃으며 대충 대답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괜히 그 할아버지에게 심술이 났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에겐 그냥 거기에 있던 화분이었을 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고받은 마음이 되진 못했을 거다. 내가 심술이 난 대상은 두 번째 할아버지가 아니라 홀연히 사라져 버린 첫 번째 할아버지였다는 것도 생각했다.


아이스크림 덕분이었는지 할아버지는 나를 보시면 웃음을 띠셨다. 웃는 눈가엔 주름이 자글자글 했는데 난 그게 그분의 매력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주름이 귀여워 보인다니,! 그런데 분명 귀여운 주름이었다. 그치만 여전히 깍듯하게 허리 숙여 인사하셨다.



그런데 이번엔 세 달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또 사람이 바뀌었다. 이번엔 제법 젊은 아저씨였다. 아저씨가 온 지 몇 주가 지났지만 인사를 한건 한두 번 정도인 듯한다. 아저씨는 늘 무표정으로 다른 곳을 쳐다보신다. 나도 굳이 인사하지 않고 휴대폰만 보며 들어온다.




한 사람이 살면서 만나게 되는 관계들이 꽤나 많다는 걸 체감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가 어쩌다 가까워질지, 그러다 또 언제 어떻게 떠나가게 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관계의 마침표가 자의가 아닌 무언가 때문에 찍어질 때마다 나는 아쉬워했다. 센터 발렛 직원처럼 그저 그런 사람일 땐,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관계들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땐 나름 애를 먹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스쳐갈 만한 인연에는 마음을 더 아끼게 되는 게 사실이다. 어른들은 나이가 들 수록 사람 사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아주 조금 알 것도 같다.


관계의 말미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만날 수는 없을까? 이제 나는 쓸데없이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의 마침표를 떠올리는 겁쟁이가 되어있다. 또 하나의 관계가 져가는 게 보일 때마다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사람들과 행복한 하루를 보낸 날에는 혼자 다짐한다.

나 꼭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그래서 계속 이 사람들 곁에 어떻게든 남아있어 보겠다고.


24년 9월, 평화의공원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