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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오리 Jun 30. 2024

무거웠던 짐

내가 같이 들고 싶은 엄마의 짐은 무엇일까?




친구들과 이른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왔다. 점점 더워지고 있는 날씨 탓에 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훌러덩 벗어버렸다. 침대 쪽으로 선풍기를 틀고 가뿐해진 마음으로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나면 얼른 씻고 누워서 정주행 하던 드라마의 마지막 화를 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잠깐 겉잠을 자고 일어난 엄마가 말했다.


'오리야, 엄마랑 야채 가게 다녀올래?'


아! 이런! 나는 늘어진 몸을 일으켜야 했다. 실은 어제저녁에도 운동이 끝난 뒤 갈 곳이 있어서 장을 보러 간다는 엄마를 홀랑 보내버렸기 때문이었다. 늘어진 티셔츠와 편안한 반바지를 줏어입었다. 엄마와 나는 장바구니를 하나씩 들고서 역 앞에 야채 가게로 향했다.


다음 날에 가게가 쉬어서 그런지 바나나 두 송이에 삼천 원, 시금치 네 단에 이천 원, 양송이버섯 두팩에 이천 오백 원. 사장님은 값을 대폭 깎아서 외치고 계셨다. 덕분에 엄마와 나는 이것저것 맘 편히 골라 담았다.


엄마는 입구에서부터 눈 독 들이던 수박을 한 통 사기로 마음먹었다. 엄마는 동그랗고 줄무늬가 선명한 게 달고 맛있다며 한참을 둘러보더니 결국 사장님이 골라준 놈으로 들어 올렸다. 내가 수박을 들겠다며 엄마에겐 가벼운 장바구니를 넘겨주었다. 호기롭게 들어 올린 수박은 그래도 제법 무거웠다. 바꿔서 들자는 엄마의 말에도 나는 고집을 부렸다. 배달도 가능하다는 사장 아저씨의 말도 못 들은 채 해버렸다. 그러고 싶었다.

어느 날 짧은 찰나의 장면이 내 마음에 꽂혔있었기 때문이다.




수영을 마치고 온탕에 들어가 몸을 녹였다. 그날따라 내가 더 늦장을 부려서 샤워가 늦게 끝났다. 엄마는 두 손 가득 목욕 바구니, 우리의 수영복, 오리발들을 챙겨서 먼저 나갔다. 그리고 나는 부끄럽게도 빈 두 손으로 급하게 따라 나갔다.


엄마는 늘 저렇게 많은 짐을 들고 있었을까. 그래, 엄만 계속 무거웠을 거야. 난 여태 가벼웠는데.





수박을 들고 집에 가는 길에 엄마는 계속 나를 신경 썼다. 무겁지 않냐고, 같이 들자고. 그래서 당당하게 말했다.


'엄마 딸 수박 한 통 정도는 들 수 있어!'


엄마가 가벼워질 수 있다면 뭐든 들어줄 수 있다고 마음을 먹었다. 짐을 함께 들고 싶다. 난 엄마 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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