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에게

by 이다한

안녕, 오랜만이야

잘 지내니?

난 네가 잘 지내지 않았으면 하는데


몇 년이 흘러도 응어리는 풀리지 않고 더욱 꼬여가고 있어

몇 가지 장면들이 뇌리에 박혀 계속 되감기 되고 있어


내가 네 앞에서 울었을 때 경멸했던 표정이라던지

내가 힘들어서 넋을 놓고 있을 때 미간을 찌푸리며 빨리 처리해버리고 싶다는 듯한 태도라던지

힘든 걸 애써 감추며 미소 지었을 때 진저리를 치며 피했던 거라던지

네가 작가로 일할 때 막내 일이 힘들어서 결국 직종을 바꿨는데, 이제 와서는 그냥 그거 버틸 걸 그랬다고 했을 때 그 말에 동조하는 나에게 짜증을 냈지


그리고 몇 가지 맴도는 말들도 있어


나를 부러워했다던지

운이 좋다고 했던 거라던지

경멸하며 아줌마 같다고 한 거라던지

자기를 무시하는 줄 알았다고 했던 거라던지


그리고

내가 너희 집에 머물렀을 때 말로는 더 있다가라고 하지만 썩어있던 표정이라던지


너무 생생해 전부

어제 있었던 일 같아

잊혀지지가 않는다


도대체 네 세상에서 나는 어떤 존재였던 거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으면 잘 정리해서 얘기를 하지

왜 그렇게 티를 낸 거야?

자기 조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싫었던 거야?

너는 그렇게 기분을 태도로 표현했으면서 왜 나는 기분을 드러내면 안 됐던 거야?


내가 너를 만만하게 봤다고 하는데, 너야말로 나를 만만하게 본 거 같은데.

왜 나는 항상 너를 받아줘야 되는 입장이지?

너는 너 기분대로 있으면서 나는 왜 내 기분대로 있으면 안 되는 거야? 난 그게 제일 궁금해.

왜 너는 내 앞에서 그렇게 경멸하는 표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면서 나는 그냥 무표정으로 가만히 있는게 너를 무시하는 게 되는 거야?

네 세상에서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너를 존중하는 게 되는 거야?


너는 내가 침묵하고 있을 때 항상 공격하곤 했어

너에게 내 침묵은 '음메 기죽어' 사인이라도 됐던 걸까?

내 침묵은 말문이 막혀 화를 참는 거였는데


도대체 내 뒤에서 어떻게 내 뒷담을 까고 다녔고, 내 뒤에서 나를 어떻게 만든 거야?


너는 항상 내 겉모습만 봤지

그러니 운이 좋다고 했겠지

내가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고 어쩌고 그런 얘기를 했어야 했나봐

그리고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참고 너를 얼마나 배려하고 그런 얘기를 했어야 했나봐


생색 내기 싫어서 대수롭지 않은 척 넘겼더니

운이 좋은걸로 그냥 치부해 버리더라


항상 웃는 얼굴 뒤에 얼마나 많은 어둠을 내가 끌어안고 있었는지

항상 괜찮다고 하는 말 뒤에 얼마나 많은 배려를 하고 있었는지


넌 알 거라 생각했는데


그저 너와 내가 점점 달라진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배척해버리더라


난 자랑한 적 없어

내 상태에 대해서 가감없이 사실을 이야기했을 뿐이야

그런데 내가 잘난 척 하는거라 생각했나 보더라?


어두운 얘기를 하면 감정쓰레기통이고

좋은 얘기를 하면 자랑쟁이고


그럼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너가 그랬지

마치 스스로 합리화하듯


"난 네가 원래 그런 앤 줄 알았어."


'원래 그런 애'의 뜻이 뭐야?

그리고 원래 그런 애면 너의 행동이 정당화가 돼?


너는 분명 나를 괴롭혔어


너는 분명 악의를 가지고 나를 공격했어


그 의도가 너무 느껴져서 아직도 심장이 저려


나는 너에게 그 어떤 악의도 가진 적이 없어

행동의 결과가 너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 순 있었겠지만

네가 그런 거에 대해서 고쳐달라고 얘기한 적도 없잖아?

그냥 너 혼자 망상하기 시작한 거잖아


있잖아, 내가 직장에서 괴롭힘 당할 때 딱 너같은 인간들이 많았거든?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프더라


이 사람들은 직장에서 만난 스쳐지나가는 사람인데 너는 7년을 같이 여행도 다니고 희노애락을 같이 했던 친구 아니니? 어떻게 직장에서 대하는 사람처럼 나를 대해. 넌 그렇게 한 거야. 너는 나에게서 멀어진거야. 그럼 이야기를 했어야지. 너 혼자 그렇게 결정해놓고 내가 그걸 알아채고 행동해주길 바란거야?


A야, 난 너한테 진심이었어

그래서 이렇게 아픈거야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괴롭히라 그래 씨발. 그 새끼들한테는 애초에 진심이었던 적이 없어. 그 새끼들은 내게 진심을 원했지만 내가 주지 않으니 괴롭힌 것 같지만.


그런데 너한테는 진심이었다고.


너는 자존감이 너무 낮은 사람이었어. 너한테 차마 말은 못 했지만. 그래서 아무런 평가도 하지 않았던 거야. 너한테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너도 나에게 아무런 평가도 하지 않았잖아? 그건 분명 배려였어. 무시가 아니라. 암묵적인 룰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관심이라도 받고 싶었던 거야?


너는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잖아.

그런데 어떻게 내가 너에게 공감해줄 수 있을까. 응?

그리고 나는 너에게 나를 보여줬는데 그게 어떻게 너를 만만하게 보는 걸까. 응?

너니까, 너를 믿으니까 내 속 얘기를 하는 거지.

그게 싫었으면 얘기를 하면 되지, 왜 내가 너를 무시하는 거라고 혼자 멋대로 생각하냐고. 응?


나는 너를 믿었고 그랬기에 가장 여린 부분을 보여줬던 거고

근데 너의 반응이 그랬으니

나는 스스로 상처를 찌른거나 마찬가지인 꼴이 된거야


내가 이만큼 다쳤다고 보여줬는데

징그럽다고 도망간 거지


그럼 구급차라도 불러줬어야지


A야

너도 징그러울 때 많았어

근데 나는 다 넘어갔다고


너는 비위가 약해


네가 비위가 약하다고 그걸 그대로 드러내는 건 본능이고, 그 이후 대처는 이성이 하는 일이야

그런데 너는 대처는 하나도 없이 본능 그대로 나한테 상처만 더 주고 사과도 없이 가버린거야

분명 너랑 나랑 동갑인데 너는 참 아이같더라


너 내가 부럽다고 했지?

난 네가 부럽더라

그렇게 한결같이 아이같을 수 있는 점이


너는 살면서 남한테 어떻게 해줘야할까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거지?

친구한테 어떻게 해야할까 이런 생각 말야

친구랑 타인이랑 구분이 되긴 했니?


아, 너 공연했을 때 말야

네 친구랑 너랑 음침하게 인생네컷 찍은 거 아직도 기억난다

그것도 왜 그런거야? 난 분명 대답을 하지 않았어

그런데 너넨 그냥 데리고 가서 찍더라


침묵을 왜 무시하는 거야?

난 너의 침묵을 무시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네가 침묵하면 항상 기다려줬거든?

그런데 너는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았지


A야

너는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해

그래서 나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내가 눈엣가시였나봐?


아, 너 내가 아빠랑 카페간다니까 그것도 부러워했지?

이혼했으니까 카페에서밖에 못 만나는 거지

너는 아빠가 항상 집에 계시지않니?

그런데 왜 카페를 가겠어 굳이 돈 들여가면서


A야

너한테 보여주지 않은 어두운 면들이 정말 많아

그 또한 배려였지

너는 전체관람가 콘텐츠만 보는 아이였으니까

그런데 너는 내 밝은 면만 보고 부러워하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왜 내가 힘든 모습을 보여줬을 때는 그렇게 피한 거야?



A야

나도 사람이야

안 아플리가 없잖아


A야

너의 아이같은 면이

내 상처를 짖이겨놓았다

분명 동갑이고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왜 너는 여전히 아이인 걸까?


A야

내가 너한테 부러웠던 점도 많았어

너희 가족 정도면 화목한 편이고

너 교환학생도 다녀왔잖아

서울 토박이고

네 주변엔 너를 도우려는 착한 사람들이 있어

나도 그 중 하나였어

너는 자존심 상한다고 그들을 거부하는데도 그들은 네 곁에 있지 참 신기해

난 제발 도와달라고 하는데도 안 오는데


너 교환학생가서 혼자 외국에서 살아봤으면서

그럼 어느정도 감정경험을 꽤 했을텐데

외로움도 느껴봤을테고

그런데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한 거야?


나를 이해하기엔 버거웠던 거야?


그럼 받아주기라도 하지

아니 받아주기 힘들다고 말이라도 하지


나는 너와 내가 다르다는 걸 항상 인지하고 있었는데

너는 나를 너와 같다고 생각한 걸까?


나의 침묵은 인내였는데

왜 너의 눈에는 자존심부리는 걸로 보였을까

아마 네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었겠지


A야

이렇게 쏟아내니 조금은 상처가 환기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네가 영영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어떤 도전도 하지 말고

그 어떤 성취도 하지 말고

그대로 썩어버려 제발


네가 덧나게 한 상처가 나를 어떻게 잡아먹었는지 나는 똑똑히 기억해

그 시작은 너였어

그냥 두면 치료됐을 상처가 너 때문에 고름이 생겼어


A야

난 너의 무능함을 혐오해

너의 무지함을 증오해

너의 소심함을 짓밟아버리고 싶어


내가 너를 얼마나 많이 치료해줬는지 모르지


A야

이제 나도 너처럼 나한테 도움 안 되는 사람들은 버리려고

도대체 너는 뭐였을까 내 인생에?

환자?

고객?


확실한 건 동등한 존재는 아니었던 것 같지?

너는 갑, 내가 을.


A야

네 인생에 너를 돕는 사람이 전부 사라지길 빌게.

너의 자존심을 위해.

그게 너의 소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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