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직하기보다 소비하는 인간
연인에게 받은 옷에는 딱 봐도 잘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얼룩을 금세 묻히고, 거금을 들여 산 전자기기에는 떨어뜨린 흔적을 남기고, 혹해서 산 물건들은 대청소를 할 때에야 발견하고는 이젠 입지 않는다며 버려버리고, 사진과 일기와 소망리스트 등 나의 기록들은 다시 읽을 일은 없다며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난 그런 사람이다. 간직하려하면 정성이 필요한 법인데, 그것이 귀찮아 그저 소비하고 말아버리는 사람이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현대인의 특성에 걸맞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휘발성. 현대인의 가장 큰 특징 아닌가. 인스타그램에서 '스토리' 기능이 나오게 된 배경도 사람들이 이제 기록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나는 한순간에 사라지는 불같은 사람이다. 쉽게 버리고, 쉽게 얻는다. 또한 나의 부주의함에 의해 마음을 쏟은 물건들이나 시간들이 후에 제 형태를 잃어버리게 될 것을 알기에 애초에 정성을 들이지 않는다. 이것이 순환되는 것이다. 마음을 들인 물건이 있어도 쉽게 망가지기에, 얻을 때 많은 애정을 쏟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더 쉽게 사용하고, 그저 소비한다.
그런 나에게도 예외는 있다. '사람들'을 소비하진 않는다. 나는 시간도 때워버리고, 내가 가진 능력도 소비해버리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래도 내가 간직하려고 하는 것들은 '사람들'과 나눠갖는 행복이다. 그런데 두려웠다. '나'와 관련된 것을 그렇게도 쉽게 소비해버리는 나인데 결국 '사람들'까지 내가 소비하게 되면 어쩌나, 영영 순간의 행복만 느끼게 되면 어쩌나. 훗날 간직할 행복한 것들이 없으면 어쩌나. 그래서 글을 쓴다. 어떻게든 나의 소비들이 기록되어 간직할 수 있게. 훗날 꺼내볼 수 있게. 나의 생각과, 그 시절의 내음새를 추억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