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허무함

by 이다한



허무함이라는 것은 어떤 목표에 쏟은 나의 애정과 노력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것들이 결국 아무 의미 없어졌을 때 나를 덮치는 것입니다. 그 목표에 대한 희망과 기다림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되었음을 알았을 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나 그 목표를 원하는 사람이 나 혼자였을 경우,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바뀌는 것 하나 없다는 사실에 숨도 못 쉴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허무함은 답답함과 무기력을 동반합니다. 이런 허무함으로부터 비롯된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일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미 수십 번의 허무함이 나의 시작을 끌어내렸고, 이젠 체화되기까지 해서 잠시 벗어났다가도 결국 몸 세포 하나하나가 다시금 무기력의 늪 속에 가라앉고 맙니다. 이렇게 난 시작을 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리는 걸까요.


참 복잡합니다. 나에게 허무함을 선사한 것들에 절대 굴복하고 싶지 않은데 너무 많이 지쳐버려 그럴 용기와 힘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그렇게 어릴 적 원하지 않았던, 그저 시키는 일과 해야 할 일만을 겨우겨우 해내는 수동적 인간상에 한 명을 보태는 꼴이 되겠군요. 끝없는 허무주의에 빠져 자기보상심리로 아무런 기대도,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 인생을 살겠군요. 정말로 이렇게 허무함에 무릎을 꿇는 인생을 살게 되는 걸까요. 나도 압니다. 내가 생각을 바꾸면 된다는 거. 하지만 말했잖습니까. 그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려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느껴지진 않는단 말입니다. 이미 너무 많은 허무함이 나에게 본능적인 감정으로 새겨졌습니다. 마치 고소공포증처럼, 내가 건물의 높은 곳에 올라가더라도 절대 떨어질 리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아도 본능적으로 두려운 것입니다. 떨어질지도 모르는 그 희박한 가능성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괜찮아, 괜찮아. 말로는 그렇게 되뇌어도 이미 세포 하나하나 안 될 거라는 기억을 갖고 있으니까요.


어쩔 땐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습니다. 이 허무함을 못 견디고 내가 어릴 적 그토록 원치 않던 근근이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된다면, 저는 유흥에나 기대겠지요. 그렇게 빈 껍데기처럼 살기는 싫기 때문에 그냥 죽어버리고만 싶습니다. 허무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를 써야 하는 삶이 어쩌다 저의 삶이 되었는지 생각하면 그냥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꿈과 희망과 열정이라는 단어, 저에겐 참 우습습니다. 정신병일까요. 우울증일까요. 약을 먹으면 될까요. 약을 먹으면 뭐합니까. 제가 경험한 것들과 다른 경험을 하지 않으면 결국 도돌이표입니다. 제가 처한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결국 제자리란 말입니다. 일단은 하라는 거라도 하면서 살고 있긴 합니다만, 이것이 제 인생이라는 것이 잘 와닿진 않습니다. 언젠간 끝내야 할 인생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됩니다. 제 꼴이 웃기지 않으십니까. 저 자신을 사랑한다고 누누이 말했었죠. 아아, 저는 저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삶을 살게 두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런데 무너진 나를 일으켜 세우긴 어려우니 끝이라도 내고 싶은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저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욕심만 많고 그에 따른 노력을 안 해서 제가 처한 현실이 변하지 않은 걸 수도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게으르니까요. 하지만 현실을 바꾸려면 현실을 직면해야 하죠. 저에겐 그것도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현실을 직면하는 순간 있던 욕심도 사라져버리더군요. 아아, 복잡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것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낄 줄 모르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