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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마음엔 취향이 없다

by 이다한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좋아함’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좋아하는 색, 음식, 음악, 공간, 리듬, 대화 방식, 그리고 사람. 이 모든 것이 취향이다. 하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겐 이 취향이 없다. 아니, ‘없을 수밖에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마음이 허기진 이들은, 내면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타인을 기웃거린다. 좋아하는 것보다 ‘필요한 것’에 더 민감하다.


이들은 물건을 고르듯 사람을 고른다. 누구를 좋아하기보다, 누가 나를 더 잘 채워줄 수 있는지를 계산한다. 그래서 관계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 된다. ‘이 사람과 함께하면 내가 외롭지 않겠다’는 이유로 관계를 시작하면, 그 만남은 처음부터 의존이다. 처음에는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며 위로가 되지만, 곧 서로의 상처에 기대어 무너지기 시작한다.


취향이 없다는 건 곧 자아가 약하다는 뜻이다. 나를 이루는 무언가가 없다면, 타인을 통해 나를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관계는 곧 확인의 장이다. “넌 나 없으면 안 되잖아”, “나는 널 이렇게까지 이해해줬는데” 같은 말들로 상대를 조여가며 자신을 존재시키려 한다. 이런 방식의 사랑은 소유이고, 집착이며, 갈망이다.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사실 사랑이 아니라 구원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내 고통을 알아주고, 채워주고, 지켜주길 바란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둘 다 구원받고 싶어 하지만, 구원할 수 있는 힘은 누구에게도 없다. 결국 서로의 결핍을 확인하다 끝없이 실망하게 된다.


공감은 서로의 약점을 공유할 때 생긴다. 하지만 약점 위에만 지어진 공감대는 언제든 붕괴한다. 건강한 공감은 결핍의 공유가 아니라 존재의 인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내가 온전해야 너도 온전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가난한 마음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타인을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결국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사랑을 하지 못한다. 그들이 하는 것은 사랑의 모양을 한 필요일 뿐이다. 그러니 관계는 병들고, 갈등은 반복되며, 결국 둘 다 고통 속에 갇힌다. 진짜 사랑은 풍요에서 나온다. 취향이 있고, 혼자서도 나를 즐길 수 있으며, 타인을 소유하지 않아도 존재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건강한 관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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