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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도서관 경계선(내가 지어냄)

by 이다한

사람을 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한 권의 책. 그리고 나는 도서관이다. 수많은 책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이제 그 책들을 내 진열대에 무작정 올려놓지는 않기로 했다. 겉표지만 보고 흥미로워 보인다고 쉽게 진열하지 않겠다.


남의 이야기는 이제 전부 창고행이다. 진열대는 더 이상 타인의 감정이나 고백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나는 더 이상 무작정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필요할 때, 적절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그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다. 내 도서관은 정리 중이다. 감정의 먼지를 털고, 필요 없는 책들을 박스에 담아 보낸다.


진열대는 이제 비워둘 것이다. 아무것도 올리지 않고, 아무에게도 내 이야기의 일부를 내어주지 않는다. 내 이야기는 기밀이다. 아무 데나 흘릴 수 있는 소문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들려줄 만큼 가벼운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선택된 사람만이 열람할 수 있는 문서다.


이 도서관은 이제 회원제다. 회원카드가 있어야 입장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카드, 아무나 받을 수 없다. 발급 절차는 까다롭고, 갱신은 수시로 이루어진다. 단 한 번 마음을 열었다고 해서 계속 머무를 수 있는 게 아니다. 조건은 엄격하고, 기준은 철저하다.


이제 나는 개방형 도서관이 아니다. 아무나 들어와 앉고, 아무 책이나 꺼내보던 시절은 끝났다. 이제는 내가 허락한 사람만, 내가 원할 때만, 잠시 들어와 숨을 쉬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나를 지키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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