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붉은벽돌집
현실과 다른 곳이 필요했다. 이십여 년 살아 온 환경과 전혀 다른 곳이 말이다. 최선의 방법은 여행이었고 여행을 가기 위해 시간과 돈이 필요했다. 휴학을 했고 월세가 새는 걸 막고자 자취 생활을 접고 지방에 있는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서울만큼 많은 일자리ㅡ노동의 질과 상관없이ㅡ를 찾긴 어려웠고ㅡ잠시 빵집에 들어갔지만 최저임금 수준에 풀타임도 아니었다ㅡ 계속해서 구직 사이트를 뒤진 끝에 기숙사와 식사가 제공되고 최저 시급보다 나은 돈을 주는 '에버랜드'로 이력서를 넣게 되었다. 현실과 다른 곳에 가고자 했지만 이런 과정은 오히려 현실과 나를 밀착 시켰다. 그런 상태로 만난 '에버랜드'는 어린이날이라는 대목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면접부터 합격 통지, 3박4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사전 교육이 쏜살같이 진행되었다. 사전교육 마지막 날이 어린이날이었던 터라 재빨리 현장에 투입되었다. 직원 전용 출입구를 통과하고 탈의실까진 평범한 일터의 모습이었는데 본격적인 현장에 들어서자 화려한 색상의 유니폼을 입은 알바생들이 양손을 반짝이며 미소를 뽐내고 있었다. 그 차림 그대로 직원 식당에서 다 같이 밥을 먹는 모습은 현실과 환상 그 경계 어디쯤이었고 '글로벌 어페어' '아메리칸 어드벤처' '매직랜드' '유러피언 어드벤처 '주토피아'로 광활한 터 위로 나누어진 5개 구역은 환상인 듯 환상 아닌 환상의 구역이었다. 포스기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체크 되는 입장객 숫자가 기본 다섯 자리라는 것만 보는 나와 달리 이 '랜드'를 만든 사람은 "황량했던 산이 푸르게 물들고, 가족동산에는 세계 도처의 동물이 뛰놀고 있다. 거기에는 수많은 남녀노소 시민들의 밝은 얼굴들이 있다"며 찬사를 보냈다. 1976년 '용인자연농원'으로 시작된 이 곳은 1996년 지금의 '에버랜드'로 이름을 바꾸어 '영원한 행복의 나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여기 그 곳과 닮은 또 하나의 장소가 있다. '용인자연농원'이 개장하기 6년 전인 1970년 15대 전 서울시장 양택식이 시작한 '남서울(강남)개발계획'으로 탄생한 강남 지역이 바로 그 곳이다. 원래 지금의 강남구 일대는 1963년 경기도에서 서울로 편입되었다가 강남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1975년 비로소 '강남구'로 독립된 곳이다. “황량했던 산이 푸르게 물드는” 대신 황량했던 산이 깎이고 논 밭 위로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곳은 당시 종로 일대에 밀집된 서울 인구를 분산 할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땅이었다. 그리고 이 계획이 실행되고 있던 1970년대 한국은 가파른 경제 성장 속도를 뽐내며 무서운 속도로 '선진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제3한강교라 불리는 한남대교가 만들어지고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 고속도로가 강남에 들어섰다. 누군가의 계획대로 서울 인구는 강남으로 서서히 분산되고 있었다. 경제가 풍요로워질수록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길과 최신형 건물이 늘어갔다. 그 변화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던 일부 사람들은 '영원한 행복한 나라' 속 국민이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때 그 곳은 기존에 서울과는 다른 환상의 공간이 분명했다.
그런 강남구 논현로 일대를 463번 버스를 타고 지나치다 보면 주변 박스형 건물과는 다른, 지붕창이 있고 붉은 벽돌로 둘러싸인 고전 양식의 건물 한 채를 볼 수 있다. 시청역 근처 '배재학당'과 사직터널 근처 '딜쿠샤'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곳이 어떤 곳인가. 1970년대 개발 계획으로 탄생한 강남이 아니던가. 그러니깐 이 붉은 벽돌집은 ‘배재학당’이나 ‘딜쿠샤’ 와 맞먹을 정도의 오래된 건물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1970년 이후에 지어진 건물일 것이다.
이 건물의 뿌리를 어떻게든 파헤치고 싶었고 마침내 비슷한 건축 양식을 찾아냈다. ‘제2제정식' 건축 양식이었다. 이 건축 양식은 19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건축 양식으로 형태와 장식이 풍부하고 색이 도드라지는 네오바로크 양식에 높은 맨사드 지붕을 결합한 양식이다. 맨사드 지붕은 2단으로 경사진 지붕으로 배수가 잘되고 다락방을 만들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지붕창도 붙이기 쉽다. 후에 이 양식은 대서양 너머 미국 땅까지 전해진다. 미국에서 조금 더 부드러워진 형태로 바뀌지만, 여전히 맨사드 지붕과 지붕창은 유지됐다. 이런 미국형 ‘제2제정식’ 특징과 대부분 들어맞았다. 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붕창은 평평하다. 입체적이어야 할 입면도 마찬가지다. 외벽 가운데 액자처럼 붙어있는 하얀 삼각형 끄트머리는 그 정체가 불분명하다. 오른쪽으로 쏠려있는 현관도 어딘가 어설프다.
'붉은 벽돌집'이 속해있는 주변을 떠올린다. 격자로 뻗은 길과 대부분의 건물이 박스형이다. 박스형 아니라서 튀는 '붉은 벽돌집'이 어쩌면 행복이 가득 넘치는 '환상의 나라'를 꿰는 첫 단추였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지역이 철저히 계획으로 탄생 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계획이란 '준비'면서 또 다른 이름에선 '욕망'이기도 했다. '붉은 벽돌집' 외관이 주는 느낌은 휴가 때면 꼭 한번 가는 펜션과 드라마에 나오는 안락한 2층 주택, 바로 그것들과 비슷했다. 또한 당시 시대적 상황을 들여다봤을 때 본보기로 삼을만한 국가는 서구 사회로 대표 되던 미국이었다. 때문에 그들의 주택 양식이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된 땅 중심에 만들어진 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행복의 이상적인 형태를 평균화 한 것 같은 공간은 강남 개발 시작점에서 아파트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아파트는 ‘붉은 벽돌집’ 외관에 비하면 아직 환상보단 현실에 가까운 편이었다. '붉은 벽돌집'은 강남 개발 구역에서 욕망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건물 중 하나다. 적어도 일정 규격으로 짜인 아파트와 비교하면 말이다.
행복의 이상적인 형태를 평균화 한 것은 여기 에버랜드에도 있다. 앞서 언급한 5개의 구역과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하는 높은 성이 그려진 벽, 시대별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식당이 그렇다. 대부분 화려하고 유명한 것들을 모티브로 삼았다. 모두 놀이공원 밖 현실과 전혀 다른 느낌을 주기 위한 노력이다. 이곳에서 행복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이처럼 '에버랜드'와 '강남 개발 구역'은 새하얀 도화지 같은 땅 위에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해서 마침내, 완성된 공간이다. 여행을 가고자 기숙사와 식사와 최저 시급보다 약간 높은 급여를 자랑하는 '환상의 나라로' 갔던 그때.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맨사드 지붕과 지붕창을 닮고 싶어 했지만 어딘가 어설펐던 '붉은 벽돌집'과 행복해 보이는 것들을 모두 몰아넣은 ‘에버랜드’ 같았는지 모른다. 닮고 따라가고자 했던 모델은 뚜렷했지만 아직은 흉내에만 머물렀던. 아직도 그 곳에서 일했을 때 듣던 에버랜드 배경 음악이 생각난다.
"환상의 나라로 오세요~ 즐거운 축제가 열리는 곳~ 모험의 나라로 오세요~ 영원한 행복의 나라 에버랜드~"
─이 글은 3호 <매거진 파노라마 463>에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