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당동 ㅎ산후조리원
행당초등학교를 막 지나치는데 흡사 인형의 집 같은 건물 한 채가 보였다. 외벽에 건물 정보가 없어 검색을 했다. 산후조리원이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이십 대 중반이 되니 결혼이란 단어가 대화에 섞여도 어색하지 않다. 자연스레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생애주기별 환상은 이미 서울살이를 통해 많이 깨진 터라, 결혼에서 주로 소비되는 웨딩드레스나 결혼식에 대한 환상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 아직 닿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임신과 출산이다. 결혼 이후,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지는 임신과 출산을 자연스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기혼자뿐이다. 미혼인과 미혼모는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아 자연스레 구석으로 숨는다. ‘H산후조리원’을 바라보는 ‘임신과 출산 경험이 없는 미혼 여성’으로서의 나는, 그래서, 더 그곳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산후조리원’은 출산 후 산모가 몸조리하는 장소이다. 그런데 산모는 왜 이곳에서 몸조리를 하며, 이곳은 도대체 어떤 기능을 제공하는 걸까.
“대부분의 산후조리원이 산모교육이란 이름으로 매일 한두 가지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산후요가나 스트레칭 등 산모의 몸조리를 위한 프로그램도 있지만 주로 ‘모유수유 코칭법’이나 ‘우는 아이 달래는 법’ 등 육아 노하우와 관련한 주제가 많다. 혹은 산후조리원과 연계된 베이비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무료 신생아 사진 촬영, 아기 이름을 짓기 위한 작명 강좌 등 파생 업계의 마케팅 시간도 있다.” ─ <요즘엄마들> 33p / 이고은 저
출산을 한 적이 없으니 직접 산후조리원을 체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엄마들이 많이 모여있는 인터넷 카페와 각종 블로그, 책을 찾아봤다. 산후조리원은 주로 산모의 숙식과 산후 마사지 제공, 모유 수유와 육아 정보 공유, 다른 산모와의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장소였다.
구체적으로, 분만실과 아기 울음, 아기를 보고 기뻐하는 가족들, 집에 꾸며진 아기용품들… 이 일련의 이미지 사이에서 ‘산모들의 쉼터’이자 ‘여성에서 엄마가 되는 환승지’가 바로 산후조리원이다. 산후조리원이 어색하던 시절(그래 봤자 90년대 중반까지)엔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산후조리사이자 육아코치였고, 출산 경험 선배였다. 엄마가 엄마에게 엄마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던 때였다. 산후조리원은 이런 존재들을 구체적으로 실체화시킨 공간이다. 또한, 호텔과 펜션, 병원 그사이 어딘가에 있을 법한 산모방 내부 인테리어와 시설들, 공용 공간으로 활용되는 마사지실이나 강연장, 식당은 거리를 걷다 돈을 내면 입장할 수 있는 곳과 별반 차이가 없다. ‘소비가 곧 존재’인 시대 흐름에 맞춘 상업 중심적 공간이다.
한편, 이 과정에서 새삼 알게 된 것이 있다. 임신과 출산에서 ‘여성’의 존재가 크게 부각되지 않거나 미화되거나, 틀에 맞춰 판단 내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병원 직원들이) 그곳을 면도하더니, 관장을 시켰어. 그러고 나서는 방 안을 좀 걸어 다니라고 하더니, 주사를 놓았지. 나는 이동식 침대 위에서 극심한 고통을 견디다 3시간 후에 깨어났단다. 그러고는 의사가 와서 또 주사를 놓았지. 그다음에야 네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출처 : <출산, 그 놀라운 역사> 8p / 티나 캐시디 저
“(...)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엄마들이 수유실에 모여 서로 젖가슴을 드러내놓은 채 ‘모유수유’를 하는 일이었다. 많은 엄마들이 이 순간을 일컬어 “젖 짜는 기계” 같았다거나 “젖소가 된 기분”이라고 표현한다. 아기들이 단체로 목욕하는 시간 직후에는 십 수 명의 엄마들이 단체로 ‘떼 수유’를 하는 진풍경도 연출된다.” ─출처 : <요즘엄마들> 33~35p / 이고은 저
‘임신과 출산 경험이 없는 미혼 여성’인 내가, 버스나 지하철에 있는 ‘임산부 배려석’이나 SNS에서 본 귀여운 아기 사진은 그야말로 임신과 출산에 한 단면, 잘 포장된 환상임을 이런 자료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26년을 살아오며 정자와 난자가 만나 태아가 되어 열 달 동안 엄마 뱃속에 있다 태어난다는 것만 교육받은 나로서는 매우 신선한 기록이었다. 이렇듯 임신과 출산에서의 핵심은 아기였다. 열 달 동안 아기를 가진 여자의 삶이라든지, 아기를 낳을 때 겪는 온갖 상황들에 대해선 일러주는 이가 거의 없다. ‘임신을 (아직) 하지 않은 여성’에 대해선 더더욱 말이다. 좋은 것만 기억하려는 기억의 습성 때문인지, 다시는 언급조차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지금 알아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배려 차원에서 그러는 건지, 미디어로 전해진 임신과 출산은 고통보다 기쁨에 초점을 맞춘다. 혹은 아예 생략해버리던가. 또한, 임신과 출산을 몸으로 직접 감당하는 사람은 여성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시선과 의사보다는) 그들이 속한 가족 공동체나 다른 집단에서 그녀의 신체와 의사를 다루려고 한다.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 공급을 제공하면서 우선순위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자녀가 한 명 이상 있어야 한다는 점이나, 결혼했으니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는 주변 가족의 말이 그렇다. 심지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낙태금지법’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뭐라 한들 변치 않는 사실은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감당할 사람 역시 여성이라는 점이다.
다른 한편, 임신과 출산은 처음부터 끝까지 돈과 함께한다. 임신 확인부터 병원 진료, 출산, 산후조리까지. 특히 산후조리에 쓰는 비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서울 영등포에 사는 직장인 박효진(33·가명) 씨는 최근 임신을 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한 병원 및 산후조리원 비와 육아용품에 쓸 비용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기 때문이다. 박 씨는 "산후조리가 중요하다고 들어서 조리원에 들어갈 생각인데, 출산비용만 최소 500만원은 필요할 것 같아서 목돈을 어떻게 마련할 지 고민이다"라고 토로했다.” ─출처 : '출산도 하기전 1000만 원 비용…'베이비푸어'의 비명' 2016.08.31. 아시아 경제
얼마 전 모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이제 임신 계획을 준비 중인 여성이 산후조리원 비용이 부담스럽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자신은 산후조리원을 포기할 수 없어 이미 결혼할 때부터 산후조리원 비용을 따로 저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 산후조리원 평균 비용이 302만 원이라는 통계를 보면, 글쓴이나 댓글을 단 사람의 절박한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비용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댓글이 있었다. 집에서 가족이나 출,퇴근 할 수 있는 산후조리사를 고용해서 산후조리하면 되지 왜 굳이 산후조리원을 가야만 하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옛날 어머니, 할머니들은 아이를 낳고도 후유증 없이 사는 분들이 많으며 수천 년 동안 인간은 출산 활동을 했고 그것에 맞게 진화되었다는 설까지 덧붙였다. 이 댓글을 쓴 사람은 스물다섯 남성이었다. 우선, 산후조리원를 찾는 이유부터 곰곰이 생각해보자. 출산 후 몸과 마음의 안정은 필수이다. 열 달 동안 몸에 생명 하나를 품고 *‘제1기 개구기, 제2기 만출기, 제3기 후산기’라 일컫는 출산 과정을 거치면 그 누구라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극심한 호르몬 변화로 인한 심리적인 불안정이 합쳐진다. 생리를 겪은 여성이라면 특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여성에겐 가사 노동자라는 역할이 주어져 있다. 제대로 쉬기 위해선 가사 노동과 잠시 멀어질 수 있고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건 여성 자신 아니면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친정이나 시댁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남편이 계속 일을 해야 되는 상황이라면 더 그렇다. 위생과 안정적인 면에서도 집보다 산후조리원이 낫다. 무엇보다 이 시기엔 심리적인 고립감이 심해진다. 이때 필요한 것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적어도 산후조리원은 후에 ‘조리원 동기’라고 불리울 수 있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항상 곁에 있다. 고비용을 쓰는 여성들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고비용을 쓸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를 탓해야 한다. 공공 산후조리원이 많아지거나 남편이 마음 편하게 출산휴가를 쓸 수 있으면 이런 시각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저출산 시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저출산은 국가 존립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국가라는 시스템을 이루고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은 이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점점 더 많은 저출산 관련 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나, 아직 역부족인지 2015년 출생아 수는 43만 명으로 최저를 밑돌고 있다. 1991년 내가 태어났을 당시 출생아 수가 70만 명 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숫자가 주는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참고로, 1970~71년 사이 각 해 출생아 수는 100만 명이었다)
2015년 10월 발표된 “제3차 저출산 정책(2016년~2020년)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따르면 크게 “주택 마련 지원/임신·출산 지원/아이 의료비 지원/육아휴직·양육비 지원/다자녀 가정 지원”이 있다. 초혼 시기가 늦어지고 결혼할 의사가 없는 청년이 늘어난 것이 이 정책 안이 만들어진 중요 원인이다. 그러나 이 정책 바탕 뒤에 기업 위주의 노동 정책과 여성을 출산 도구로 보는 시선이 깔려있다. 출산을 미끼로 한 지원 정책 투성이다.
출산율을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접근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임신과 출산, 나아가 육아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일어나야 한다. 당장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벅찬데 어떻게 나와 같은 생명을 하나 더 낳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돈 들여 학력을 쌓고 스펙을 두르고 국가에서 잘해주지 못하는 복지 혜택을 찾기 위해 대기업에 지원서를 넣으면 “눈을 낮추라고” 핀잔을 준다. 대기업에 지원하는 청년뿐만 아니라 여러 크고 작은 일터에서 “인건비를 갈아 만든” 노동 구조에서 오늘, 내일을 위해 열심히 사는 청년도 많다. “아재”가 좋은 말인 줄 아는 중장년층 사이에서 울고 웃고 “한국장학재단”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셈을 하며, 한편에서 “수저론”에 다시 한 번 정의 내려지는 뉴스를 훑으며 스마트폰을 본다. “출산 도구”로서의 성, 곳곳에 잠재되어 있는 “가부장제”의 흔적은 여성을 압박한다. 아직 다 해결 못 한 “세월호”는 평생 청년들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겨졌고 그 와중에 터진 “지진”과 “체계가 없는 재난·안전 시스템”을 보며 데자뷰를 느낀다. 저출산은 이런 근본적인 구조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계속 진행될 것이다.
‘H산후조리원’의 외관은 꼭 인형의 집 같다. 인형을 갖고 놀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땐 인형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이곳은 인형이 아닌 진짜 새 생명과 새 생명을 준 자가 함께 머물고, 한 몸이었던 존재가 두 몸으로 나뉘어 공간을 지탱하며 ‘부모’와 ‘자식’이 태어나는 곳이다. 인형의 집이 아닌 인간의 집으로 ‘H산후조리원’은 그곳에 있다.
─이 글은 5호 <매거진 파노라마 2016>에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