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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Sep 10. 2017

어떤 삶을 사는 사람들

청년기에서 성년기로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세상이 더 재미없어졌다. 처음하는 것 투성이었던 때와 달리 거의 대부분의 일이 '반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때, 많은 이들이 '노잼 시기'라 일컬으며 제2의 사춘기를 겪는다고 말한다. 나 역시 그렇다.


겨우 겨우 사회초년생 삶까지 왔다. 일하기 시작한 지 햇수로 5년 째지만 나는 여전히 사회초년생 대접을 받고 있다. 중간에 여러 회사, 여러 분야를 거치며 신입과 경력 구분이 모호해진 탓이 크다. 연봉은 딱 한 번 최저시급 정도로 받은 적 있었던 것 빼고는 전형적인 사회초년생 연봉이지만 대기업, 중견기업 신입 연봉과는 잴 수 없다. 


자취하는 탓에 각종 생활비 등을 모두 부담하며 살다보니 현실 감각이 진해졌다. 매일 가계부를 쓰며 돈의 흐름을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됐고 용도별 카드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살이를 하는 탓에 본가에서 다니는 사람보다 월세나 각종 공과금 지출이 있는 것이 이런 습관을 들이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다. 


그렇게 "20대 후반의 지방 출신/월세 세입자/근로자/여성"의 타이틀을 갖고 살고 있다. 이렇게 되고보니, 이 시기 이후의 삶의 모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언론에서는 "대기업 같이 큰 기업에 다니는 여성" 또는 "회사를 직접 운영하는 여성" 또는 "일도 하고 육아도 성공한 여성" 또는 "20대처럼 보이는 30대 이상 여성 연예인"을 홍보하고 있지만 어느 것도 와닿지 않았다. 


이때 중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 한 명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그녀의 부모님, 특히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첫 번째 삶의 모델을 발견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이었다가 몇 해 전 교육청 장학사가 되셨다. 무엇보다 이 분은 내 친구가 중학생이었던 무렵부터 방학만 되면 가족과 함께 세계 곳곳을 누볐다. 나는 비행기를 타본 적 없는 중학생이었기에 당시 친구가 해외여행을 간 기억이 더 또렷하다. 친구의 어머니는 무엇보다 집에서 친구의 아버지(도 교사다)와 술 한 잔 하며,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실제 얘기를 바탕으로 실행에 옮긴다고 했다. 이를테면 여행이 그렇다. 친구는 평소에 내가 하는 얘기나 생각하는 방식이 바로 이 부분에서 비슷하다고 했다. 몇 개의 에피소드를 더 듣고나니 중년이 되었을 때 꼭 그렇게 살고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항상 남편이나 가족 등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하고 싶은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힘을 유지하고 싶다. 또 이런 삶을 살기 위해 일상에서 꾸준히 성취감과 자본을 얻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이번엔 대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를 만났다. 몇 해 전 결혼하여 이번에 둘째까지 낳은 친언니와 가족 얘기를 해주었다. 두 번 째 삶의 모델을 발견했다.


친언니의 남편, 그러니까 내 친구의 형부가 가정에 어떻게 이바지하는 지 알려줄 때마다 감탄했다. 이렇게 완벽한 남편의 모습을 갖춘 사람을 가까이에서 처음 봤다. 일과 가정 어느 것에도 소홀하지 않으려는 몇 개의 에피소드가 이어지면서 만약 누군가와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이렇게 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특히,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이 와닿았다. 나중에 얘기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친구가 카톡 사진 한 장을 보내줬다. 어린 아들을 재우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육아를 할 지 세상 편한 자세로 얘기하고 있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었다. 이때 시각이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는데도, 두 사람은 잠든 아이를 사이에 두고 한 분은 옆으로 누워 한 분은 엎드린 채로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매일 대화를 할 수 있는 지 신기하다는 친구의 메시지도 사진과 함께 왔다. 

이 두 가지 사례를 정리하면, 나는 앞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삶을 반복하며 성취감을 얻는 삶을 살고 싶다. 가족과 마음 맞는 친구를 곁에 두고 그들과 조화롭게 살고 싶다."


돌발과 우연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그런 돌발과 우연이 있더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이런 식의 구체적인 미래를 미리 한 번 그려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싶은 사람을 떠올리기 보다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싶은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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