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혼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회생활을 하는 일주일 중 홀로 하루 전체를 쓰지 못한 날이 있다면 나는 평일과 주말의 경계가 없거나 일터와 집이 구분되지 않는 사람처럼 어딘가 텅 빈 상태가 된다. 만남이 주는 기쁨만큼 고독이 주는 만족도 공존해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 이유다.
나 혼자 산다
“혼자서 무슨 재미냐"는 소리를 들으면 “그러게요.” 한다. 왜냐하면 재미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꼭 사람 수가 늘어난다고 재미가 같이 비례하진 않는다. 사람 수는 재미의 만족도를 올리는 여러 기준 중 하나다. 중요한 건 재미의 포인트를 결정하는 자신의 기준이다. 나에게 재미란 편안하게 웃거나 떠들거나 고요히 생각할 때 솟아나는 감정이다. 그것은 보통 혼자서 무언가를 할 때 생긴다. 별 목적 없이 켠 유튜브에서 통통한 고양이 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 가장 편안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메시지나 전화로 떠드는 순간 같은. 그런데 나는 정말 혼자일까? 왜냐하면 고양이 영상 아래에는 보이지 않는 익명의 사람들이 글로 떠들고 틀어놓은 음악에도 누군가의 목소리가 있다. 메시지나 전화를 주고받는 친구는 단지 물리적 거리 차만 있을 뿐, 실시간으로 나와 소통하고 있다. 이제 ‘혼자 있다’는 의미는 조금 수정될 필요가 있다. 타인과 같은 시간 또는 같은 장소에 있지 않을 뿐, 언제든지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상태이다. 다시 말하면 ‘혼자만의 시간이 좋아요’ 앞에 ‘통신 가능한 환경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좋아요’를 붙여야 한다.
항상 연결되는 세상
그런데 정말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24시간 함께하는 통신을 버리고 온전히 눈앞에만 몰두하고 싶다. 언제부턴지 스마트폰 같은 통신 기계가 없으면 신체 일부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이제는 이런 복잡한 감정에서 해방되고 싶다. 세계적인 IT 기업 구글 에릭 슈미트Eric Emerson Schmidt 회장은 몇 해 전 보스턴대 졸업식 축사에서 “인생은 모니터 속에서 이뤄질 수 없다.”라고 했다. 10년 전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를 다룬 일본 애니메이션 <썸머 워즈, Summer Wars>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 속 시간 배경은 실제 개봉 시기보다 1년이 지난 2010년이다. 컴퓨터, TV, 닌텐도, 휴대폰 같은 단말기를 이용해 OZ라는 전세계로 연결되는 가상세계에 접속해 일상적인 일을 처리한다. 지금 보면 자연스럽지만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낯설고 어색한 장면이다. 물론 당시에도 인터넷은 존재했다. 하지만 24시간 내내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상세계는 쉽게 현실과 구별되었으며 엄연히 현실세계 다음이거나 아래였다. 그래서 영화 전개가 지나치게 환상적으로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대부분의 일을 굳이 현실에서 처리하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이쯤 되면 현대인들에게 ‘디지털 디톡스(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중단하고 휴식하는 처방 요법)’는 권장이 아니라 필수다.
가까운 미래
그렇다고 완전한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손으로 쓴 편지가 그립고 특정한 상황에서 전화를 할 수 있던 때가 애틋하더라도 그만큼 불편함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닿지 않는 정보 때문에 기회를 얻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이른바 정보 불균형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개인뿐만 아니라 경제, 지역, 국제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말썽이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긴 글보다 짧은 글을 찾고 직접 생각하기보다 다른 사람이 올려놓은 생각을 받아들인다. 한 가지 일에 진득하게 집중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벌인다. 게다가 이렇게 쏟아지는 정보는 축적되지 않고 휘발된다. 이런 현상이 이어질수록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고 개인은 비어간다. 특히 이 현상은 혼자일 때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역설적이게도 혼자일수록 더 많이 연결된다. 이것이 정말 나아가는 사회일까? 정보 공유 플랫폼이 많아질수록 정말 세상은 좋아지는 걸까? 큰 노력 없이 얻는 지식이 보편화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울까? 가까운 미래는 가상 세계가 현실을 대체하거나 압도하지 않을까?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이 쓴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 생각난다. 미래에도 고독이 보편적인 감정으로 남아있을지 궁금하다. 먼 옛날부터 사람은 무리를 지어 생활했고 사회를 만들었으며 이 체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다만, 경계가 하나 더 늘었고 우리는 매일 이 경계에서 경계를 의식하며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을 갖는다. 그런데 이 경계를 아예 의식하지 않는 인류가 나타나면 또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혼자일수록 연결되는 세상에 의문도 거부감도 없다면, 그들과 나와 같은 인간이 모였을 때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직접 대답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