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팍에 매달려있는 계급장의 막대기 하나가 두개로 늘어나고 며칠 뒤 1야수교를 수료했다. 소속된 신교대에서 자대로 바로 가는것이 아니기에, 정식으로 전출가기 직전 약 일주일 동안 사단 본부에 있는 보충대에서 추가교육을 받게 되었다. 홍천에서 춘천역 그리고 다시 보충대까지 도착하니, 나를 포함해서 이십여명의 신병들이 한데 모여있었다. 다시 새로운 지역과 규칙으로 놓이게 된 우리는 서둘러 무거운 짐을 정리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어색함이 또 한번 가득차니 입안부터 텁텁해졌다. 식사 후 가지는 개인정비 시간에 그나마 공중전화를 여유롭게 이용할 수 있음에 안도하며 연락처 속 사람들에게 통화를 걸며 차오른 텁텁함을 덜었다.
어느덧 해는 높은 산고개 너머로 자취를 감췄다. 티비를 가운데 켜놓고 각자 할 일을 마무리하던 중, 조교 한 분이 우리를 20시에 소집시켰다. 안내 받을 사항이 더 남았나, 짐작하며 막사 건물 끝 쪽 독서실로 모였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그 조교님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멀뚱멀뚱 바라보는 50여개의 긴장한 눈동자들을 본인의 앞에 두고서, 책상에서 노트를 꺼내며 씨익 웃음을 짓더니 갑자기 어떤 글귀들을 읊기 시작했다. 여러 편의 글들이 그의 찰랑이는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었고, 대부분 어떤 커플의 뜨거운 사랑 또 처절한 이별이 자간 사이사이 스며들어 있는 내용이었다. 기막힌 표현들이었으며 가슴저린 감정들이었다. 어색함과 지루함을 느끼던 우리는 그 기분들은 죄다 어디론가 내다버린 양, 하나같이 이야기에 매혹되었고 끝까지 집중해서 들었다.
예기치 못한 낭송회가 끝나니 어느덧 분침은 시계의 밑바닥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들고 있던 노트가 닫히자, 조교님은 글귀들 모두 자신이 직접 써내린 것이라 밝혔다. 너무나도 솔직하고 생생한 분위기가 글을 읽는 목소리에서 충분한 전율을 울렸기에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만, 직접 들으니 새삼 놀라웠다. 우리 모두 감탄을 이어갔고 그 역시 다시 환하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글귀 속 주인공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인연이자 위안이 되어준 사람이었다고 했다. 약혼까지도 생각했으나 사소한 이유로 등을 돌리게 되었으며, 아직까지 그 사랑을 쉽게 잊지 못한 채 그리워하고 있다며 애절한 비하인드를 고백하기도 했다.
애달프고 애틋한 창작의 배경에 대해 밝히고 난 뒤, 조교님은 글을 본격적으로 쓰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대학생 시절까지는 축구와 요리를 주되게 해왔었다. 진심으로 깊은 마음을 나누던 그녀와 헤어진 뒤 슬프고 힘든 마음을 조금씩 메모해보기 시작했고, 이를 토대로 문학과 글쓰기의 영역에 관심을 가지며 새로 심취하게 되었다고 했다. 입대 후에는더 심도있게 자기만의 시와 문장을 꾸준히 써내려갔으며, 우리에게 읽어준 글 전부가 바로 그러한 기록들이었던 것이다. 때마침 몇 주 전 본인의 글들을 하나의 독립출판물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으며 며칠 뒤 인쇄 발주를 넣을 계획이라고도 이야기했다. 실제로 미리보기 용으로 나온 책 표지를 살짝 보여주기도 했는데, 당당히 자랑하면서 드러내는 웃음이 얄밉거나 이상한 구석 하나 없이 부러움을 품게 만드는 영롱한 미소 그 자체였다.
무언가 아주 크게 한방 얻어 맞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 자리에 앉아있는 순간까지도 군대에 와서 내가 얻어 갈수 있는 것이 과연 있기나 할까 싶었다. 신교대에 들어온 이후 그냥 하루하루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 바라며 훈련과 주특기 교육 등 어떤 일에서도 의욕을 쉽사리 가지기 어려웠었다. 내게는 그저 한없는 인고의 시간일 뿐이라 여겼고, 단지 버텨내고 흘려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게 전부였었다. 아직 제대로 부대 생활을 시작도 안했던 상황이니 자기계발이니 성장이니 계획할 감조차 잡히지 않았었다. 사회에서 이것저것 여러 경험을 해오면서 그나마 품을 수 있었던 소망과 의지란, 당시의 나에겐 색이 바래진지 오래였다. 그러던 나의 앞에 진심으로 해맑은 감성과 열정을 지닌 채 미소를 한껏 띈 그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매력적인 창작물을 손에 쥔채로 말이다.
'글귀', '이야기', '독립출판'… 군대에 들어오기 전 나의 관심사 중 일부를 광범위하게 차지하던 테마들이었다. ‘뼛속부터 문과 기질’이라고 말할 정도로 텍스트를 읽거나 쓰는 일을 좋아했고 즐겨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거나 어떠한 이야기가 담긴 콘텐츠를 받아들이는데 늘 열려있는 편이었다. 계절마다 독립서점에 들러 개성넘치는 작품들을 왕창 사서 간직하는 것을 나름대로 취미로 가지기도 했었다. 아프고 화나더라도 담담히 적어내리면 금세 풀리고 만족과 회복을 느끼던 나. 책장에 손가락 끝이 살포시 닿는 감촉을 마치 보물처럼 귀중하게 아끼던 나. 텍스트와 함께 할 때마다 어렵지않게 웃음을 곧장 짓던 나. 조교님의 그 미소로부터, 말과 글과 책이 나에게 다가오던 순간을 떠올리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독서실을 나와 복도를 통해 생활관으로 복귀하면서 한 가지 마음을 굳게 먹게 되었다. "나 또한 글을 써서 나만의 책을 만들자!" 결코 짧지 않을 18개월의 군 복무를 의미없이 멍하니 날리는 건 크나큰 낭비겠지만, 적어도 나만의 작품을 뜻깊게 남기고 완성할 수 있다면 두고두고 소중한 기회로 자리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앞으로 남은 군 생활 동안 꼭 그 목표를 이루리라 가슴깊이 다짐했다. 어물쩍거리거나 바라만보는데 그치지 않고 나의 언어를, 나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기록하겠다고. 언제가 전역이 다가올 즈음에는 그 조교님이 이룬 것처럼 조그맣게 모음집을 책으로 펴내리라고. 이 모든 걸 반드시 가능케할 것이며, 그리하여 그의 티끌없이 밝은 웃음을 비슷하게 지닐 수 있는 떳떳한 사람이 되겠다고 말이다.
자대에 온 지 두 달이 훌쩍 지났고 전체 복무기간의
1/4을 채웠지만, 그 저녁을 감싸던 조교의 웃음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선하다. 이름도 얼굴도 모두 가물가물하지만 따스하게 올라가 있던 입꼬리만큼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난 계속해서 글을 작성하고 있다. 휴대폰을 받은 직후로 매주 꾸준히 시와 에세이를 쓰고 있으니, 적어도 처음 다짐대로 실현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텍스트와 이야기의 가치에 소중함을 되새기면서, 오늘도 이렇게 또 다른 글자의 판을 두들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