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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혁H Aug 07. 2021

그럴싸한 관계

20.10.17.


추운 겨울의 계절이 걷히고 서서히 봄 볕이 세상 위로 들어오던 날이었다.
내게도 지겹고 기나긴 겨울의 시간이 저물고,
드넓은 서울 살이가 이제 막 시작하던 날이었다.
 지방 변두리에 위치한 일반고에서 3년 가까이
 닫히고 갇힌 생활을 보내고 난 직후였다.
 2017년 끝 자락, 수능과 면접을 바쁘게 헤쳐나갔고 마침내 가까스로 희망하던 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상경하고 마주한 대학 그리고 서울은
내가 익히 있던 세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일일이 그 생경한 차이를 하나하나 풀어보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이 도시에서 펼치는 스무살은
막대한 기회이자 벅찬 도전이 되었다.
자그마한 일상부터 공적인 영역 하물며 행동반경까지.
급하게 몰려온 변화는 대부분 설렘의 파도였지만 때로는 갑작스런 장마철 폭우 같기도 했다.

서울이라는 시공간에 발을 조금씩 적시기 시작한 나한테 있어 놀라움의 대상은 비단 달라진 환경과 조건뿐이 아니었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크고 작은 감탄이 향했다. 특히 학부에서 마주친 학우들을 알고나서부터는 그들의 이야기와 모습에 일종의 존경심을 얕게나마 품기까지 했다.
 어딘가 부족함 없이 당당한 차림새와 행동거지부터
놀라울만큼 차원이 다른 경험의 폭과 깊이까지.
좁은 시야와 작은 체구의 촌뜨기 소년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 있는 부분마저 동경의 대상이었다.

 당시 나는 사람을 사귀고 마음을 나누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오랜 컴플렉스와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서 이어져온 어색함과 망설임도 분명 컸지만, 그것보다도 새로 알게 된 사물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열광이 더 강했다. 새로 얼굴을 마주하게 되고 대화를 나누게 된 이들과 하루빨리 친분을 쌓고 싶었다. 그들의 사연과 소식을 곁에서 더 가까이 들어보고 싶었으며 하나뿐인 새내기의 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곧잘 나오는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대학생활의 로망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의
널따란 관계 속에서 열어가고 싶었다.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피어나는 3월의 정과 연.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을 마음 속 주머니에 잠시
구겨 넣은채로 그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다행히도
대부분 새로운 관계에 열려 있는 편이었고 오히려
술자리나 모임에서 서로 즐기는 텐션들이 높아서 더욱더 친구맺기가 수월한 분위기였다
마침 그 시기는 '인싸'의 개념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나름 '놀 줄 알고' 주변과 잘 어울리는
외향적인 사람이 인싸라는 캐릭터로 재정립되면서 인싸-아싸 구도가 밈으로써 등장하곤 했다.
 때때로 나오는 "오 인싸~"라는 말에 부정하며 변명해댔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개강초에
 한 모든 움직임과 마음씨는 인싸의 축에 끼고자
했던 것들이었다. 입으론 장난삼아 "아싸"라 자칭했지만, 내심 속으론 아싸의 특징이나 성격으로 호명되기 꺼려했었고, 더더욱 인싸의 위치를 지향하며
나의 모든 것을 의식하고 행동했던 것 같다.

안팎의 부단한 노력과 학교 특유의 열기 덕분일까, 그렇게 넓고 또 얇은 관계가 꾸준히 지속되었다.
몇 달이 좀 지나니 다들 새학기에 어느덧 적응을 마치고 있었다. 누구나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동기들, 선후배들 사이에서는 주로 어울리는 베프 무리가 절로 형성되곤 하였다. 수십명씩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가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었으나, 분명하고 또 당연하게 평범한 일상에서는 소수의 무리에서어울리고 개인 간의 깊은 관계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리고 여리던 마음은, 그러한 양상 속 괜한 조바심을 내곤 했다. 나름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한 애들끼리 비밀스럽게 수다를 나누는 광경을 목격하거나, 학교 주위 동네를 떠나 어딘가를 따로 놀러간다는 소식을 접하면 왠지 모르게 소외되는 느낌을 받곤 했다. 이듬해가 되어 깨달았지만
그건 단지 자연스러운 섭리같은 형성일 뿐, 아무도 의도해서 날 배제하거나 멀리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각자에게 더 통하고 더 이어지는 부분이 많을수록 같이 있는 시간이 자주 있게 되는 것이었다.

모두에게 100만큼의 마음을 주고자 했했으나,
실제로 내가 갖고 얻는건 평균 50도 되지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친구를 사귀는 법이 다르고, 인연을 만드는 길도 다르며, 지니는 마음의 양과 폭도 다르다. 똑같은 공식과 정량이
모든 이들에게 온전히 평평하게 적용되진 않는다.
어떤 이에게는 200만큼 쏟아 그만큼 뜨겁게 받을 수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단순히 30만큼만 나눠도 충분히 서로에게 불편함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의 치열한 생태계는 그러한 방식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무척이나
애매하고도 오묘한 그 '인싸다움'에 급급했던 나는 관계를 애써 넓히고 마음을 겨우 늘리면서도
위와 같은 상식을 좀처럼 인지하지 못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동시에 혼돈이 생겨났고 허무함이 들이닥쳤다. 무언가를 헛헛하게 놓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제서야 난 친구라는 테두리를 다시 정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엄연히 지인과 친구, 인연은
다른 굴레였으며 동시에 스펙트럼이었다. 넓고도
길다란 무지개 색띠처럼 인간관계는 이루어져 있다.
간신히 어색함을 면해 몇몇 대화만이 오가는 사이든,
반가움에 서로 근황을 떠들고 고민을 나누는 사이든,
추억의 흔적이 진해 오래 지나도 남을 깊다란 사이든,
친분이라는 개념은 각자에게 맞는 정도로 필요한 만큼 저마다 다르게 비춰지는 색깔의 연속이었다.
사람을 사귄다는 건, 그저 자연스레 관계의 덩어리가 만들어지는 과정 위 내가 가능한 범위에서 정을 약간씩만 덧붙이면 되는일이었다. 비로소 나는
인싸와 아싸의 경계가 참 모호하고 중요하지 않음을 이해했다. 단순한 성격 차이이며 다른 생활양식에 불과했지, 무엇이 우월하고 무엇이 뒤처지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웃자고 생겨난 '밈'으로 비롯된 표현이었으니 실제 삶 속에서마저  
굳이 얽매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 뒤로부터 난 '그럴싸'의 삶을 추구하고 있다.
인싸도 아싸도 아닌 제3의 분류를 그럴싸라고 부르는 짤 하나를 보고 난 뒤 실제 자아와 닮아았다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격이 일부 달라진 측면도 있었지만, 본연의 특징은 다를 바 없었다. 때로는 활발하다가도 때로는 내성적인, 여럿이서 어울려 노는 것도 즐기면서도 혼자만의 시간도 유유하게 누리는 사람. 내 마음이 진정으로 편하고 쉬운 길은 완전한 인싸도 아싸도 아닌 그럴싸의 방향이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어쩌면 그 모든 학기 초 모임과 대화 속 등장했던 인물들 역시 저마다 비율이 다를 뿐이지 그럴싸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여전히 사람에게 마음을 더 주고 싶어하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적당한 거리와 선을 지킨다. 간혹 정말 깊은 사이가 될 사람에겐 더 드러내지만 굳이 전부에게 그럴 필요가 없음을 현재는 알고 있다. 여전히 단체 생활이 마냥 쉽지만은 않고 새로운 사람 한 명 한 명을 파악하고 맞춰가는 게 참 어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제는 나에게 맞는 인간관계의 스킬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피곤하게 무리하지 않고도
내면의 에너지를 채우고 사이의 색채를 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람을 알아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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