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아몬드 나무

고흐의 탈을 쓰다

by 채코

오랜 시간 생레미 병원에서 지내며 지루한 나날을 보내다가 테오에게서 기쁜 소식을 담은 편지를 받는다.


"우리는 아기가 언제나 형처럼 굳센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어. 그래서 아이의 이름을 형의 이름으로 짓기로 했어_테오"


테오에게서 손이 보드라운 아기가 탄생했다는 내용이다. 아기의 이름을 나의 이름으로 지었다는 동생에게 부끄러움을 가지기에 그러지 말라고 타이른다. 서로 편지로 옥신각신하다가 끝내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 생명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 소식을 듣고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 아마 모르실 거예요. 저는 그 소식을 듣고 바로 조카의 침실에 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 그림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흰색 아몬드 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랍니다_고흐"


병원에 혼자 있으면서 극심한 피로감이 밀려와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데 나에게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다. 테오가 있는 곳으로 당장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병원 안에 갇혀 있기에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병원 원장도 장기간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갓 태어난 아기의 보드라운 손을 움켜쥐고 얼굴을 비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나 당장 유화 물감 살 돈도 없고 조카에게 선물할 장난감이나 양말 한쪽을 살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그림 그릴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아기의 탄생을 축하할 겸 아몬드 나무의 생명을 주제로 그림 그리기로 마음먹는다.


잠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몸을 추켜세우고 밖으로 향한다. 조금 쌀쌀한 2월이지만 이제 나뭇가지에 푸릇푸릇 새싹이 돋아난다. 하얀 캔버스를 바라보기만 해도 웃음꽃이 피어난다. 조용히 유화물감을 덧바르며 홀로 정성을 다해 붓질한다. 푸른 하늘을 바탕으로 조금씩 나뭇가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팝콘이 팡팡 터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림 속의 아몬드 꽃이 살아난다. 잔 가지의 꽃순에 빨간색을 입히니 한 폭의 그림이 더욱 도드라진다. 옅은 노란색, 분홍색으로 꽃잎 언저리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그림을 그리는 중에도 실실 웃음이 나온다. 제2의 생명 탄생으로 산소를 입안 가득 물고 잠깐이라고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너의 부부 소식에 난 다시 희망을 느꼈다.
희망이란 건 특별한 게 아니야...
풀처럼 꽃처럼..흙처럼..자연을 느끼는 일이지..
그러니 부탁한다
너무 애쓰지 말고 언제나 건강을 돌봐라.._고흐


생명의 탄생을 얼마나 고귀하게 느끼는지, 자연에서 희망을 가진다는 그에게서 감동을 받는다. 그림만 들여다보면 몰랐을 그의 정신세계를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 속에서 알 수 있다. 미치광이, 돌연변이, 돌팔이로 세상에 손가락질과 정신적으로 매질을 당하지만 그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생명존중 그리고 조카에 사랑을 고스란히 그림 속에 담을 만큼 순순한 마음이 그립다. 그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림이 아직도 남아있고 살아움직인다. 저 그림속의 아몬드 꽃이 만발하여 봄을 가져다주고 희망을 주어 감사하다. 그림 한장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더해준다.

900%EF%BC%BF1749174629400.jpeg?type=w580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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