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학교 마치고 수학학원을 화요일 하루 4시간 수업 듣는다. 하루에 4시간 하기 힘들면 2시간만 하라고 타이른다. 딸은 돈이 아깝다며 충분히 시간을 가진다고 말한다. 나도 한마디 덧붙인다.
중학생이 되어 잠금을 해지해서 핸드폰 보는 시간이 늘더니 늘 끼고 산다. '런닝맨'을 반복해서 계속 본다. 보는 것을 트집 잡고 물고 늘어지고 싶지만 참아본다. 그래도 하루 종일 게임을 하는 건 아니잖아. 혹시 PD가 될 수 있잖아. 잔소리가 튀어오려고 준비 중이다. 마음을 두지 말고 내 일이나 찾아보는 거다.
문을 열고 딸 방에 들어가면 발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다.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어서 보기 싫다. 바닥에 놓인 옷가지를 한가득 잡아 현관 앞에 놓은 적도 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 오면 풀어야 내가 살겠다. 그것은 온전히 트집 잡기이다. 한참을 딸과의 실랑이에서 전쟁이 종료되려는 시점이 되면 후회가 밀려온다. 거미가 방에 와서 거미줄을 치더라도 가만 두자. 딸 방의 방문을 열지 말고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그곳은 금지된 판도라의 상자라고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절대 열지 않고 간섭하지 않는다. 그런데 또 책상이 문제이다. 온갖 물건이 가득 쌓여 있다. 최근에 키티에 꽂혀 문구점에 들르면 보통 3시간은 기본이다. 그렇게 사 모은 플라스틱이 책상을 빼곡히 매운다. 바닥과 책상을 보면 한숨이 푹 나온다.
회사에 다녀오면 문제집 3장을 풀었는지 확인한다. 엄마 숙제가 되어야 맘이 편하다. 공부 습관을 잡는다고 하다가 애만 잡는 꼴이다. 중학교 1학년 딸을 들들 볶아야 속이 후련하다. 아니 멸치나 땅콩도 아닌데 뭐 그리 매일 볶아 대는지 한심하다. 그러다 홀랑 타면 어쩌려고. 달달 볶고 들들 볶고 싶지만 침을 꿀떡 삼키자. 말이 하고 싶다면 조용히 입속에 껌을 넣어보자. 껌이라도 잘근잘근 씹어 방바닥에 탁 뱉어보자. 화가 마법처럼 달아난다(너 지금 소설 쓰는거 아니지?). 아리따운 딸이 엄마의 말에 새파랗게 질린 꼴을 보고 싶지 않다.
A4 한 장이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다. 또 시작이다. 아무리 다음 주 제출한다지만 미리 하면 좋잖아? 왜 그걸 그냥 내버려두냐고. 속사포로 날리고 싶지만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숙제를 잘 해간 적이 있나? 매번 안 해가서 손바닥 맡고 교실 뒤편에서 서 있는 내가 갑자기 떠오른다. 그만하자.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다.
딸이 물건을 사면 돈을 아끼라고 한다. 없이 자라서 그것이 한이 되니 또 긴 연설이 시작된다. 아이를 잡아 놓고 외할아버지가 돈을 벌지 않아 죽도록 외할머니만 돈 벌며 고생한 이야기를 아이를 앉혀놓고 반복한다. 아이도 몇 번째인지 가늠하기 힘든 옛날이야기는 듣고 싶지도 않은데 멈추라고 할 수도 없다. 식지 않는 잔소리의 마지막은 늘 똑같다.
딸의 진로를 찾는답시고 저녁을 먹는 딸에게 폭풍으로 이야기한다. 어제 동네 쓰레기 소각장에서 불이 한바탕 나는 바람에 매연이 목구멍에 들어와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딸을 또 다그친다.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일보 직전인데 밥맛이 없다. 나의 말 덕분에 아이의 얼굴이 찌그러진다. 나의 조급증이 늘 문제이다. 밥 먹는 얼굴에 침 뱉지 마라.
공부를 하고 자다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고등학교 1학년의 수업은 중학교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외워야 하는 범위가 칠판 한가득이다. 잠을 줄여서라도 공부를 해야 한다. 아이는 나의 방에 들어와 쪽잠을 잔다. 잠이 부족하니 10분만을 반복한다. 공부에 도움도 안 되면서 기운 빠지게 또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하고 만다.
신발 사이즈를 확인하려고 저녁에 남편과 백화점을 다녀온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백화점에서 보고 온 똑같은 운동화를 주문한다. 주문하고 하루가 지난다. 택배가 언제 도착하는지 반복 확인한다. 참을 만도 한데 꼭 한마디를 한다.
일어나라.
밥 먹어라.
책 봐라.
씻어라. 이 닦아라.
뛰지 마라. 발소리 좀 쿵쿵대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