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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Mar 26. 2023

76세 노감독의
지극히 사적인 필름 조각!

<파벨만스> 리뷰

예상했다. <파벨만스>와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오스카의 영광은 없을 거라는 걸 말이다. 보수적인 아카데미에게 한두 번 외면 당한 게 아니기에 이번 결과는 쉬이 예상했을 터. 감독은 오스카의 영광보다 이 영화 자체를 완성했다는 데 의의가 둘 것 같다. 지극히 사적인 필름 조각을 모으는 결심과 노력. 유머와 휴머니즘이란 마스킹 테이프로 필름을 이어 붙여 소박하지만 따뜻하고, 사적이지만 객관적인 영화가 탄생했다는 건 이 노감독에게 큰 의미를 부여한다. 물론, 그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있어서도 그 의미는 동일하다. 



| 영화라는 꿈을 만드는 소년

▲ 부모와 함께 첫 극장 나들이를 가게 된 새미. 그의 인생 첫 영화는 <지상 최대의 쇼>! ⓒ CJ ENM 제공


<파벨만스>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를 처음 만난 유년 시절부터 부모의 이혼, 유대인이기에 받았던 차별, 영화로 구원받은 삶, 그리고 영화판에 뛰어다니는 순간까지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왜 자신이 영화에 매료되었고, 지금도 오랫동안 연출가로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틈을 내어준다. 


영화는 인생 첫 극장 나들이 장면부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보이는 소년 새미(마테오 조리안)는 기대 반 걱정 반의 얼굴이다. 부모님을 따라 극장에 왔기 때문. 엄마 미치(미셸 월리엄스)는 “영화는 절대 잊히지 않는 꿈이란다”라는 말로 긴장을 풀어주려 하지만 쉽지 않다. 


소년의 첫 영화는 세실 B. 드밀 감독의 <지상 최대의 >다. 영화에서 기차가 전복되는 장면에 매료당한 그날 밤, 어김없이 악몽을 꾼다. 이 소년이 생각해낸 처방전은 장난감 기차로 극장에서 본 장면을 똑같이 재현해 보는 것. 이를 본 엄마 미치(미셸 윌리엄스)는 아들에게 사준 카메라로 기차가 충돌하는 순간을 촬영해 계속 반복해서 보면 공포는 사라지고, 기차는 부서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새미는 엄마의 말에 따라 직접 촬영을 하고, 엄마와 함께 옷장에 들어가 완성된 필름을 함께 본다.


▲ 기차가 충돌하는 매력(?)에 빠진 새미 ⓒ CJ ENM 제공


우연에 일치일지 몰라도 새미가 매료된 장면은 기차가 등장한다.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의 서막을 알린 작품인 <기차의 도착>이 떠오른다. 당시 이 영화를 봤던 관객들처럼 새미 또한 기차 충돌 장면을 잊지 못한다. 이는 영화가 가진 원초적 매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려주는 장면으로 사용된다.


감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새미는 영화의 매력(?) 덕분에 악몽을 꾸는데, 엄마의 도움으로 악몽에서 벗어난다. 그 방법은 직접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절대 잊히지 않는 꿈’이라는 말을 전제로 했을 때 그는 꿈을 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꿈을 만든 셈이다. 영화라는 꿈을 계속해서 만든 그의 발자취의 시작이라 말할 수 있고, (그가 만든 제작사인 ‘드림웍스’를 연상케 한다) 현실의 힘듦을 잊기 위한 목적으로 영화를 동원한 첫 사례가 된다.



| 가혹한 현실을 바꾸는 편집이란 마법

▲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고 있는 새미와 친구들 ⓒ CJ ENM 제공


어렸을 때부터 카메라가 곧 장난감이자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처럼 여기는 새미를 보면 스티븐 스필버그가 왜 감독이 될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 한 예로, 여동생들, 친구들과 함께 서부영화를 찍은 새미는 총격 장면에서 2% 부족함을 깨닫고 편집 시 필름에 구멍을 내어 ‘탕! 탕!’ 총을 쏠 때 임팩트 있는 시각효과를 낸다. 빛에 매료된 이 소년에게 기발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샘솟는지 그야말로 천재적이다. 


이런 그가 카메라와 잠시 이별하게 된다. 가족 캠핑 촬영 영상을 편집하다가 아빠 버트(폴 다노)의 동료인 베니(세스 로건)와 엄마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것. 외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슬퍼하는 엄마에게 선물로 줄 영상을 편집하다가 그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소년은 편집을 통해 불륜이 아닌 아름답고 웃기며, 사랑스러운 엄마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영화가 지닌 매력이 오히려 현실을 회피하고 자신을 속이는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 이후 고등학생이 된 새미는 카메라를 잡지 않는다. 더 이상 꿈을 만들지 않고 가혹한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애리조나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사 간 후, 부모 관계는 더 틀어지고, 유대인 차별도 심하게 받는다. 한 마디로 그의 인생은 나락을 걷는다. 


▲ 졸업무도회 때 '땡땡이의 날'을 상영하는 새미의 모습 ⓒ CJ ENM 제공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구원하는 건 영화다. 여자친구의 도움으로 우연히 카메라를 잡게 된 그는 고교 졸업 무도회에서 상영하는 기념 촬영물인 ‘땡땡이의 날’을 촬영한다. 그리고 편집을 거쳐 상영한다. 영사기 뒤에서 그는 자신이 영화를 완성했다는 만족감이 아닌 그 영화에 담긴 졸업생들이 저마다 주인공이 되어 나올 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미소 짓는다. 특히 자신을 괴롭혔던 동급생은 영화 속 자신이 영웅처럼 나오자 실제 자기 모습이 아니고, 놀림감이 된 것 같다며 새미를 몰아세우지만, 이내 그만의 방식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그다음 날 이혼을 결심한 엄마와 지극히 평범하고 편안한 대화가 오간다. 


새미는 부모의 이혼에 대한 부채감을 갖고 있다. 그 근원에는 가족에게 알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엄마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편집한 진실하지 못한 마음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땡땡이의 날’ 상영작 이후 자신을 괴롭힌 친구의 말에 생각이 달라진다. 친구를 악당으로 그리지 않고 영웅으로 그린 건 그가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게 팍팍한 현실이 아닌 행복한 꿈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새미는 엄마의 불륜 사실을 감추고 아름다운 모습만 편집했던 건 그의 잘못된 판단이 아니었다는 걸, 그 짧은 시간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는 걸 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 부모에게 그리고 영화에게 바치는 연서 

▲ <파벨만스> 영화 촬영 현장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모습 ⓒ CJ ENM 제공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파벨만스>는 자전영화인 동시에 부모에게 바치는 늦은 연서와도 같다. 이 영화는 1999년 감독의 누나인 앤 스필버그의 각본으로 출발했고, 이후 토니 쿠쉬너와 함께 직접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며 탄생한 작품이다. 내용상 부모에게 상처가 될까 두려웠던 감독은 부모 모두 돌아가신 후인 2020년에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감독은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영화화하는 걸 주저했다”며 “이 결정은 내가 넘어야 할 선 중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이 프로젝트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 새미의 부모 역할을 맡은 폴 다노와 미셸 윌리엄스. 폴 다노는 전혀 다른 인물이 되었고, 미셸 윌리엄스는 미세한 감정 연기를 너무 잘 표현했다! ⓒ CJ ENM 제공


자신의 이야기인 동시에 가족의 이야기가 되는 <파벨만스>의 특성상 그 두려움은 컸지만, 그로 인해 극 중 부모의 모습은 주관적이기보단 객관화된 시점으로 비친다. 피아노를 치며 가족과 연인 베니를 사이에 두고 고민하는 미치, 단란한 가정을 꾸린 전 아내와 가족의 모습을 보고 씁쓸한 표정을 짓는 버트의 모습 등 부모이기 이전 힘겨운 현실을 묵묵히 버텨내는 사람들로 보여준다. 감독은 아들로서 보지 못한 부모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으며 뜻대로 되지 않았던 지난한 인생을 보낸 그들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마치 이제는 하늘에 있는 이들에게 보내는 연서처럼 말이다.  


연서는 영화에게도 바친다. 감독은 힘든 현실 속 구원의 길을 내어준 영화에게 고마움을 드러낸다. 영화라는 꿈을 좇는 그 과정에 부침도 있었지만 이내 제자리를 찾고 한 걸음 내딛게 해준 그 힘. 어쩌면 감독에게 있어 영화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고, 지금까지 영화인으로서 살아가게 해준 동력으로서 고마움을 내비친다. 


▲ <파벨만스>의 포스터에 담긴 비밀은? ⓒ CJ ENM 제공


성인이 된 새미가 존 포드(데이비드 린치)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영화에서 지평선을 바닥에 두거나 꼭대기에 두면 흥미로워. 그걸 중앙에 두면 더럽게 지루해.” 이 말을 듣고 할리우드 스튜디오 거리로 나온 새미의 뒷모습에 카메라는 황급히 지평선을 바닥에 둔다. 이 흥미로운 엔딩은 감독 특유의 위트가 담긴 동시에 앞으로 자신의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겠다는 다짐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만든 영화보다 앞으로 만들어낼 그의 영화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p/s: 이 영화를 보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전작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 수가 있다. 부모의 이혼 경험은 <미지와의 조우> <E.T> <에이 아이> 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 영향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스파이 브릿지>로, 유대인이란 정체성에 관련한 생각은  <뮌헨> <쉰들러 리스트>로 보여줬다. 개인적으로는 왜 그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가족으로 귀결되는 이야기가 많은지 궁금했다.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이제 그 답을 듣게 되어 너무나 후련하다. 찾아 헤맸던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느낌이랄까. <파벨만스>를 보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서부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순수하게 영화를 만들고 고민했던 그 소년의 모습이 잊히지 않아서인가.  




별점: ★★★★☆ (4.5)

한줄평: 사적인 필름 조각으로 이어붙인 영화라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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