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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Apr 03. 2023

‘길복순’보다 ‘킬복순’이 빛난다!

영화 <길복순> 리뷰

전도연이 킬러를 맡는다고? 서로 엉겨 붙지 않을 것 같은 이 조합은 그 자체로 거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길복순>이 공개되자마자 플레이를 누른 이들의 마음은 다 비슷했을 터. 약 2시간 20분의 러닝타임이 지난 이후 그 호기심과 기대감은 채워졌을까? 반은 채워졌고, 반은 텅 비어졌을 것 같다. 



| 말보다 액션, <길복순>의 정체성

영화 <길복순> 스틸 / 넷플릭스 제공


업계 최고 킬러인 길복순(전도연). 하지만 집에선 딸 재영(김시아)에겐 서툰 엄마다. 엄마 역할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이 일을 그만두려는 복순은 자신이 속한 살인청부업체 MK ENT. 대표 민규(설경구)에게 재계약 관련 논의를 매번 미룬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맡은 일을 하던 도중, 이 임무에 어두운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시도하지 않는다. 살인청부업계 내 규칙 중 하나가 회사가 허가한 일을 반드시 시도해야 하는 것. 이를 어긴 복순은 회사를 넘어 모든 킬러의 타깃이 된다. 


<길복순>은 친절하게도 첫 장면부터 영화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교각 공사장 한 가운데, 야쿠자(황정민)와 세탁소 직원처럼 위장한 복순은 맞대결을 펼친다. 야쿠자는 호텔 가운을 입고 자신의 오래된 검을 집는다. 그리고 이 칼에 대한 역사를 주저리 떠든다. 사무라이 정신까지 논하는 이 시끄러운 야쿠자를 향해 복순이 집어 든 무기는 마트에서 산 도끼. 역사 뭐 그딴 거 없다. 그냥 직업의식 반,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 반, 그리고 약간의 희열을 담아 연신 도끼질해댄다. 그러다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킬러는 장비를 바꾼다는 말로 쉬어가더니 총으로 마무리한다. 


영화 <길복순> 스틸 / 넷플릭스 제공


이 장면에서 <길복순>은 말보다 액션으로 보여줄거라는 것. 도끼로도 맞짱 뜰 수 있다는 복순의 킬러 스킬을 오롯이 보여준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복순에게 있어 도의와 명예보다 중요한 건 빠른 업무 처리이고, 이 세계에서 지키는 무언의 규칙 따위로 자신을 옭아매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인물이라 알려준다.(그래서 총으로 해결!) 그리고 그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직업을 숨길 정도로 정체를 숨기고 좋은 엄마로 보여줘야 하는 딸 재영이라는 사실도. 



| 기능적으로만 소비된 캐릭터들이 약점


극 중 액션이 킬러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길복순의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무기인지, 반대로 길복순과 그 주변인의 이야기가 액션을 돋보이게 하는 무기인지 놓고 보자면, 영화는 전자를 택한다.  <킹스맨> 시리즈,  <존 윅> 시리즈와 살짝 그 결을 달리하는 지점이다.(개인적으로 이 두 영화와 비슷하다고 보지 않는다.) 첫 장면 이후 멋들어진 액션 장면(식당에서 킬러들의 공격에 사투를 벌이는 길복순)이 나오기까지 사회와 가정에서 이중고를 겪고 있는 그녀의 삶과 애환, 고민 등의 전사는 쌓이고 쌓이고 또 쌓인다. 


영화 <길복순> 스틸 / 넷플릭스 제공


기술적으로 전사 쌓기를 위해 영화는 복순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계기로 킬러 세계로 이끈 민규를 비롯해, 민규의 동생이자 MK ENT. 상무 차민희(이솜)의 질투 어린 견제, 후배 희성(구교환)과의 관계,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딸 재영, 그리고 자신과 똑 닮은 인턴 영지(이연)의 등장 등 주변 인물을 통해 스토리의 긴장감을 부여하고, 스토리의 외연을 확장해 나간다. 


영화 <길복순> 스틸 / 넷플릭스 제공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시기와 질투, 사건들이 증폭되는 이야기는 꼭 서야 하는 역을 그냥 지나치며 앞으로만 돌진하는 기차처럼 보인다. 빼곡한 전사를 소개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희성 제외한 나머지 인물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부족해 보인다. 특히 민희가 왜 복순을 자신의 오빠 곁에서 떼어 놓으려 하고 심지어 죽이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 캐릭터 자체가 기능적으로만 소비된다. 어린 시절 복순을 연상시키는 영지의 쓰임도 아쉬움을 남긴다. 재영 또한 복순을 떳떳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길로 인도하는 중요 인물로서 그 몫을 다 하지만 모녀지간이라는 애증의 관계(신파가 아니다)를 피상적으로만 다룬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힘들다.  


이 구조 속에서 복순이란 캐릭터가 가진 매력, 예를 들면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규칙과 선을 보란 듯이 어기고, 넘는 그 통쾌함,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인정했을 때 가장 빛난다는 걸 몸소 알려주는 그 당당함이 되려 후퇴한다. 



| ‘길복순’ 보단 ‘킬복순’! 전도연이라 가능한 영화

영화 <길복순> 스틸 / 넷플릭스 제공


그럼에도 이 영화를 끝까지 멱살 잡고 끌고 가는 건 액션이다. 극 중 다수의 액션 장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민희의 계략으로 한순간 복순이 킬러들의 타깃이 되어 싸우는 식당 장면이다. 사회라는 냉혹한 현실을 잘 보여주는 이 장면에서 킬러들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무기와 액션, 이에 대항하며 약점을 찾아 일격을 가하는 복순의 액션 등이 멋들어지게 나온다.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느껴지지만 대체로 긴박감이 느껴지는 합과 조미료처럼 뿌려진 블랙 코미디 요소가 잘 버무려진 편이다. 


마지막 민규와의 대결 장면도 인상 깊다. 앞서 소개한 호쾌한 액션의 멋이 아닌 바둑기사처럼 한 수 한 수 조심스럽게 하지만 날카로운 수를 두는 머리싸움이 빛을 발한다. 여기에 아름다운 추억과 사랑이 곧 약점이 되어 빚어지는 애처로움이 더해지며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길복순’ 보다 ‘킬복순’이 빛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길복순> 스틸 / 넷플릭스 제공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서 애초의 원동력은 전도연이다. 이미 구상 단계부터 전도연을 염두하고 시나리오를 썼다는 변성현 감독의 말처럼, 이 역할은 전도연밖에 할 수 없도록 보인다. 다수의 영화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한 이력답게 전도연은 곧 길복순이 된 모습으로 호쾌한 액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워킹맘의 애환, 직장인의 비애, 자신의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딸 때문에 고민하는 엄마의 모습 등 다채로운 연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 스스로 떳떳해지고 싶은 마음을 담았는지 영화를 보면 그녀가 큰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이에 각 상황에 부닥친 복순의 감정과 행동은 납득이 되고, 기여코 영화의 마지막까지 함께 하게 만든다. 



p/s: 변성현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스타일리쉬한 영상미와 애니메이션에서 ‘퍽’ 하고 나올법한 캐릭터와 대사가 이번 영화에서는 단점이 된듯하다. “사람 죽이는 건 심플해. 애 키우는 거에 비하면”이란 대사처럼 엄마가 지닌 현실적인 무게감을 차용해 사실감을 배가 시킨 게 아닌 오히려 그의 연출 스타일을 짓눌렀다고나 할까.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에서 워킹맘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게 일을 죽이게(?) 잘하는 길복순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별점: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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