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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Apr 13. 2023

인생 루저를 위한 B급 감성 찬가!

<킬링 로맨스> 리뷰

“당황하지 마세요! 원래 이런 영화입니다!” 이선균, 이하늬, 공명 세 배우의 이름만 믿고 <킬링 로맨스>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가가 해주고 싶은 말이다. 동화 같은 이야기라며 못 박은 뒤 각종 패러디에 웨스 앤더스 감성 영상들이 나오고 급기야 뮤지컬과 슬랩스틱 코미디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킬링 로맨스>는 B급 영화의 운명을 타고 탄생했다.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감이 안 온다면 이상 할 것 없다. <남자사용설명서>의 이원석 감독이 만들었으니 당연한 결과. 그렇다고 돈 아깝다고 생각하기엔 이르다. 혼미해지는 정신을 가다듬고, 들썩이는 엉덩이에 힘을 팍 주고, H.O.T와 비 노래에 몸을 맡기면 그제야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으니까.


© 롯데엔터테인먼트


국내 최고의 여배우이지만 발 연기로 더 유명한 여래(이하늬)는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사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때 남국의 섬 콸라가 눈에 들어온 그녀는 곧바로 여행을 간다. 그곳에서 이 섬을 주름잡는 부동산 재벌 조나단(이선균)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행복한 삶이 계속될 줄 알았던 여래. 그러나 조나단이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이며 폭군이고, 돈에 눈이 먼 남자라는 걸 알게 된다. 감옥에 갇힌 사람처럼 7년을 버틴 그녀는 우연히 이웃집에 사는 자신의 팬클럽 출신 4수생 범우(공명)를 만나 남편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이상하지만 왠지 가능할 것 같은 계획에 착수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킬링 로맨스>는 이원석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로, 결을 따지자면 <상의원>보다 <남자사용설명서> 스타일에 더 가깝다. 키치나 복고풍 요소를 잘 활용한 조악한 영상, 상황마다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를 매칭시켜 얻는 동력으로 꾸준히 엑셀을 밟는 연출력은 변함없다. 대신 감독은 전작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그동안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것을 오롯이 다 넣어 믹스한다. 마치 B급 감성을 기반한 코미디에 전혀 결이 맞지 않는 요소들을 다 때려 넣어, 이 세상 유일한 맛을 창조한 느낌이랄까. 


이 지점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전작에서는 이시영이 맡은 ‘보나’라는 비교적 정상(?) 캐릭터가 있었기에 그나마 공감대가 형성되고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모든 캐릭터가 붕 떠 있는 느낌이다. 영화 초반 ‘동화’라는 콘셉트의 샌드박스를 마련했지만,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렵고 부담이 간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럼에도 영화에 계속 눈이 가는 건 병맛 코미디다. 전작에 비해 다소 억지스러운 장면들이 보이지만 어떻게든 관객을 웃기겠다는 마음이 담긴 장면들이 즐비하다. 특히 조나단을 죽이기 위한 계획 실행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 여래와 범우는 승부욕이 강한 성격을 역이용해 ‘극열지옥’ 불가마 찜질방으로 유인, 그곳에서 오래 참다 죽게 놔두는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지옥의 맛을 보여주기 위해 숯을 무차별적으로 집어넣는 장면이나, 조나단, 범우 모두 사경을 헤매도 절대 불가마를 먼저 나가지 않는 모습, 살인 암호인 ‘푹쉭확쿵’을 말하다 그 즉시 비트박스가 되는 상황 등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한다. 여기에 청국장 식사 장면 등 다수의 웃음 유발 장면들이 한몫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B급 감성으로 똘똘 뭉친 현실감 제로인 이 영화의 후반부 대결 장면도 매력적이다.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이 여래와 범우가 의기투합해 조나단과의 마지막 대결을 벌이는 장면에서 뜬금없이 음악으로 승부를 본다. 



조나단은 여래를 가스라이팅할 때 부르는 H.O.T의 ‘행복’을, 여래는 팬클럽 공식 노래인 비의 ‘레이니즘’을 개사한 ‘여래이즘’을 부른다. 자신을 가스라이팅할 때 부르는 그 음악에 대항해 본인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노래로 맞대응하는 여래와 범우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통해 감독은 인생 루저들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사회가 규정한 선에 도달하지 못해도, 가족 및 사랑하는 이들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해도,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두려움 없이 해낸다면 진정한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알려준다. (극 중 타조가 처한 상황과 마지막 선택과 이와 상충된다.)


물론 다소 괴랄할 수 있는 장면에서도 불도저처럼 자신의 스타일로 중요한 주제를 흔들림 없이 보여주는 감독의 뚝심은 대단하다. 이 지점에서 단순히 캐릭터를 코미디로만 소비하지 않고 각각의 페이소스를 가미하는 등 진중하게 다루는 감독의 태도도 느껴진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감독만큼 배우들 또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배우들의 연기에 놀라겠지만, 다양한 모습에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제껏 보지 못했던 이선균의 코믹 연기는 놀라고(?) 놀랍다(!). 봉준호 감독이 집어낸 매력과 정반대인 이원석 감독이 집어낸 병맛 매력은 ‘이츠 굿(또는 귤)’! 받아들이기 나름이니 자유롭게 판단하시길.


© 롯데엔터테인먼트


태생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이 영화를 많은 대중이 좋아할지는 미지수다. 전작보다 친절하지 않은 영화의 운명은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달려 있을 정도. 만약 이 작품을 마주하고 싶다면 팬클럽 ‘여래바래’의 마음으로 ‘극열지옥’에 들어간다 생각하고 보길 바란다. 그럼 우려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푹쉭확쿵’의 속도감으로 진행되다 결과적으로 ‘핵존맛’ 영화로 재탄생되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추신: 엔딩크레딧 이후 짧은 영상이 나오니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마시길. 물론, 충격에 휩싸여 일어날 힘도 없겠지만. ^^




별점: ★★☆(2.5 / 5.0)

한줄평: 인생 루저를 위한 B급 감성 찬가! 단, 그들만의 외침으로 끝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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