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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May 12. 2023

그렇게 소년은 어른이 된다!

영화 <클로즈> 리뷰  

도대체 붉은 색 꽃밭에 선 말간 얼굴에 큰 눈을 가진 소년은 어디를 응시하고 있는 걸까? 영화 <클로즈>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 든 의문이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그 답을 찾으려 마음먹었지만, 이내 접었다. 너무나 가까웠지만 점차 멀어져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 그 순간, 그리고 그때의 친구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라는 걸 첫 장면부터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클로즈> 스틸 / 찬란·(주)하이스트레인저 제공


“너희 둘 사귀는 사이야?” 여름 방학이 끝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레오(에덴 담브린)와 레미(구스타브 드 와엘)는 동급생들에게 이 질문을 받는다. 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내고 둘도 없는 사이인 이들의 모습은 흡사 연인처럼 보여서다. 이런 시선이 부담스러운 레오는 레미와 거리를 둔다. 자신은 남자라고 외치는 듯 아이스하키도 시작한다. 한순간 너무나 가까웠던 사이는 점점 멀어지게 되고, 데면데면한 사이가 된 두 소년. 그러던 어느 날 레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클로즈>는 <걸>(2018)의 루카스 돈트 감독 작품이다. 소년과 소녀의 경계에서 ‘발레리나’를 꿈꾸는 청소년이 주인공인 전작처럼, 이번 영화도 정체성 혼란을 경험하는 두 소년을 카메라 앞에 세운다. 줄거리와 소년들이 풍기는 뉘앙스만 봐도 퀴어 영화처럼 보이지만 감독은 그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까웠던 이들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는 과정을 세심하게 담는다.


영화 <클로즈> 스틸 / 찬란·(주)하이스트레인저 제공


눈에 띄게 포착되는 관계의 균열 지점은 숲속 아지트 장면과 자전거 장면이다. 오프닝에 등장했던 아지트 장면에서 이들은 보이지 않는 적이 오고 있다는 거짓말로 숨거나 도망가는 등 둘만의 놀이를 행했는데, 중반 이후 레오는 이 놀이에 동참하지 않고, 레미는 소외당한다. 자전거 타는 장면도 초반에는 웃으며 누가 더 빨리 가는지 경주 놀이처럼 느껴지지만, 중반 이후에는 같이 가기 싫어서 먼저 도망가 버리는 탈출의 움직임으로 보인다.  


변화의 계기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하거나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갈 때 경험하는 설렘으로 포장된 두려움이다. (누군가는 설렘으로 치환할 수 있겠지만, 두려움과 설렘은 맞닿아 있다.) 특히 레오는 레미와의 관계에 대한 동급생의 말을 들었을 때 민감한 반응을 일으킨다. 마치 이를 인정하게 되면 새로운 친구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고립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진 듯하다. 그 결과 한 몸과도 같았던 레미와 점점 떨어지려 하고, 밀쳐내고, 말도 잘 걸지 않는다. 그럴수록 레미는 다가오려 하지만, 레오는 더 완강히 뿌리친다. 그들만의 세상(또는 사회)이 펼쳐졌던 레미의 붉은색 방에서 벌어지는 몸싸움은 이를 잘 보여준다.


영화 <클로즈> 스틸 / 찬란·(주)하이스트레인저 제공


두 소년의 이야기가 더 와닿는 건 카메라 워킹에 있는데, 제목처럼 인물들에게 착 달라붙어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변화를 포착한다. 눈빛은 물론, 어깨의 떨림까지 잡아낼 정도로 이들의 변화를 주시하는 카메라는 중반을 기점으로 달라지는 이들 관계의 온도 차도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여기에 두 소년의 전사를 모두 전하지 않고, 오롯이 미묘한 감정의 변화와 각기 달라지는 상황만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이야기의 절제미도 보여준다. 이는 소년들의 움직임을 더욱더 주시하게 하고, 그에 따른 궁금함과 공감을 끌어낸다.


두 소년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와해로 인한 비극은 관객에게 너무나 느리게 다가온다. 이런 이유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순간 짙은 잔향만이 남은 듯한 감정의 파고를 경험하게 한다. 꽃이 지고 뿌리까지 뽑혔는데도, 감정의 잔향은 쉬이 없어지지 않고 가슴에 작은 생채기가 남을 정도로 마음의 동요까지 일어날 정도. 특히 관객 스스로 유년 시절 레오와 같은 행동으로 그 시절 친구라는 이름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갖게 한다.


영화 <클로즈> 스틸 / 찬란·(주)하이스트레인저 제공
영화 <클로즈> 스틸 / 찬란·(주)하이스트레인저 제공


이 같은 <클로즈> 매력은 루카스 돈트 감독의 유려한 연출력과 함께 레오와 레미 역을 맡은 에덴 담브린과 구스타브 드 와엘의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눈빛 연기에 있다. 유독 근접 샷이 많은 영화에서 소년들의 감정 변화는 오로지 눈빛으로 헤아릴 수 있는데, 미세한 변화까지도 그 맑고 고운 눈망울로 표현하는 연기는 단연 최고. 켜켜이 쌓아 올린 눈빛 연기로 인해 둘이 달렸던 꽃밭을 홀로 달리다 마지막 어딘가를 응시하는 레오의 마지막 모습에 긴 여운이 남을 수밖에 없다.  


영화 <클로즈> 스틸 / 찬란·(주)하이스트레인저 제공


이제 레오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열세 살의 기억이 생겼다. 추운 겨울 얼어붙은 땅이 어느덧 봄이 되면 생장의 땅으로, 여름이 되면 이내 꽃을 피우는 만물의 땅으로 변화하듯 레오 또한 그렇게 생을 살아갈 것이다. 레미와의 기억을 품은 채로. 그렇게 소년은 어른이 된다!    




평점: 3.5 / 5.0

한줄평: 그렇게 소년은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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