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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May 31. 2023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춤바람 난 남편?

영화 <사랑하는 당신에게> 리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선 간, 쓸개 다 빼 줄 있을 정도로 모든 걸 다 내어 주고, 은하수 같은 넓은 이해와 배려를 하며, 낯설고 하기 싫은 것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이 세상 가장 힘든 게 사랑의 이름으로 자기 것을 내어주고 나를 바꾸는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춤바람(?) 난 이 남자가 위대해 보인다. 자신을 비워내고 오롯이 아내를 위해 춤을 추니까 말이다. 


영화 <사랑하는 당신에게> 스틸  / 티캐스트 제공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홀로 살아가는 70대 노인 제르맹(프랑수아 베를레앙). 슬픔에 잠길 겨를도 없이 홀로 된 아버지를 돌보려는 아들, 딸, 손녀, 그리고 오지랖 넓은 이웃의 집중 관리에 녹초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제르맹은 오래전 아내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라 리보트 무용단에 입단한다. 세상을 떠난 날까지도 아내는 무용단에서 춤 연습을 해왔던 터라 그 바통을 이어받으려 했던 것. 조용히 그 의무를 다하려고 했던 그 순간, 단장인 라 리보트는 그에게 주연을 맡기고, 제르맹은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습에 매진한다. 건강을 걱정하는 가족들 몰래 춤바람 난 그는 매일 고단한 몸을 이끌고 귀가하지만,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행복에 기뻐한다.  


<사랑하는 당신에게>는 제목 그대로 사랑하는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특별한 러브레터다. 텍스트 대신 현대무용으로 마음을 전한다는 콘셉트만 봐도 그 특별함은 배가 된다. 차별화된 콘셉트가 눈에 띄지만 영화가 본질적으로 말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행동으로 옮길 수 있고, 어디까지 자신의 것을 내어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사랑하는 당신에게> 스틸  / 티캐스트 제공


그 주체는 제르맹이다. 자신만의 연서를 작성하기 위해 제르맹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현대무용의 장벽은 물론, 70대라는 나이, 건강, 자식들 몰래 다녀야 하는 연습, 옆집 이웃 눈치, 공부를 봐줘야 하는 학생 등 그가 춤을 배우고 무대를 올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까지 들 정도. 하지만 사랑의 힘은 이 모든 장애물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오로지 이 남자에게는 아내를 향한 사랑과 그만의 작별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 어렵다는 현대무용을 배우고, 자식들의 과잉보호를 피해 스파이 뺨치는 눈치작전을 펼치는 등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여기에 쏟아붓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영화 <사랑하는 당신에게> 스틸  / 티캐스트 제공


제르맹의 노력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던 것을 느껴보고 싶은 그 마음이 원천이다. 그는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봤을 때의 행복감을 이미 알고 있다. 도서관에서 첫 만남 뒤, 각자의 나이에 해당하는 책 페이지에 비밀 편지를 숨겨 놓고, 서로 찾아보며 즐거워했던 일들, 아내의 권유로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손에 놓지 못하는 기쁨만으로도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사랑에 관한 굳은 신념을 가진 이 할배의 모습에서 상대방이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사랑하고 애정이 있는 것을 해보는 용기와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고 그 이행을 통해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영화 <사랑하는 당신에게> 스틸  / 티캐스트 제공


사랑하는 당신에게, 춤을 추고 있을 때면 당신이 곁에 있다는 것이 느껴져.
보고 싶어. 영원히 당신만 사랑해.



그런 의미에서 현대무용은 부재한 아내를 조금이라도 느껴볼 수 있는 통로이자, 마지막 작별을 고할 수 있는 이별의 매개체로써 사용된다. 다른 춤보다 비교적 마음의 말들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범위가 넓은 현대무용의 특징은 영화에서 잘 발휘된다. 후반부 제르맹과 라 리보트 단원들이 펼치는 멋진 무대는 신비로움과 애잔한 슬픔, 그리고 드디어 완성했다는 기쁨이 느껴지는데, 영화의 메시지와 무용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순간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따뜻한 감동을 전한다. 


영화 <사랑하는 당신에게> 스틸  / 티캐스트 제공


<사랑하는 당신에게>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의 슬픔만을 다루지 않는다. 제75회 로카르노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할 정도로 위트가 넘치고, 삶을 돌아볼 순간을 전하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한다. 다른 방식으로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에 집중한 듯 제르맹의 이야기는 기분 좋은 웃음에 집중한다. 이를 가능하게 한 건 제르멩 역의 프랑수와 베를레앙 덕분이다. <더 코러스>(2004)의 악독한 교장 역과는 달리, 푸근하고 너그러운 매력을 보여주는 그는 상황마다 부담스럽지 않은 코믹함을 연기하며 극의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영화 <사랑하는 당신에게> 스틸  / 티캐스트 제공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영화인 동시에 무용과 시니어에 관한 작품이기도 하다. 극 중 제르멩을 무대로 이끈 장본인인 라 리보트는 2020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현대무용가로 ‘스페인의 피나 바우쉬’로 불린다. ‘라 리보트 무용단’도 실제 등장, 하나의 무용 작품이 완성하는 과정과 멋진 무대를 볼 수 있으니 만끽하시길. 


더불어 영화는 아프고, 힘들고, 쉽게 지칠거로 생각하는 시니어의 고정관념을 단 한 번에 깨 버린다. 제르맹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며 춤을 통해 제2의 삶을 살아갈 동력을 찾는다. 영화 마지막에 흐르는 'O Sole Mio(오 솔레 미오)는 제르맹과 이 세상 모든 시니어를 위한 찬가처럼 들린다. 시니어라고 집에서 안전하게 있으라는 법은 없다. 새로운 인생을 위해 떠나라~ 그리고 즐겨라~~




평점: 3.0 / 5.0

한줄평: 춤으로 써 내려가는 특별한 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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