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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May 30. 2023

마흔에 만난
둘리와 고길동이 주는 가르침?

영화 <아기 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뷰

(리뷰로 보일 수 있지만, 에세이 성격이 강해졌습니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와 정겨운 놀이터에서 논 느낌이라서 그랬나 봅니다! 참고와 이해 부탁드립니다.)


둘리가 탄생한  올해로 40년이다. 주민등록증도 있으니 둘리는 이제 마흔, 불혹이다. 이렇게 세월이 흘렀을까 생각해 면 나 또한 둘리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고길동 아저씨는 환갑의 나이가 되었을 법하다. 나이가 드는지도 모른 채 바쁘게 달려왔던 우리들을 다시 만나게 한 건 <아기 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재개봉 덕분이다. 언제 만나도 변함없던 이들의 모습이 어찌나 반가운지. 그 기쁨도 잠시,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마흔이 되어서야 알게 된 이들의 이야기가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영화 <아기 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 워터홀컴퍼니(주) 제공


둘리는 처음 만난 건 1983년 ‘보물섬’에서 연재된 만화가 아니었다. 내 또래 친구들은 거의 다 1987, 88년 KBS에서 방영된 <아기 공룡 둘리>로 만났다.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익숙한 주제가가 나오는 시간 모두 다 TV 앞에 앉았고, 호잇! 호잇!’ 하면서 둘리가 된 것처럼 초능력을 부렸고, 집마다 아빠는 동의(?) 없이 고길동이 되었다. 주변에는 도우너, 또치, 마이콜, 희동이처럼 생김새와 행동이 비슷한 친구들은 영락없이 같은 이름의 별명이 생겼고, 놀이터나 골목길에 떼로 모여 함께 얘기하며 놀았다. 물론 핵폭탄과 유도탄들의 최고 히트곡 ‘라면과 구공탄’도 함께 불렀다. 


영화 <아기 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 워터홀컴퍼니(주) 제공


생각해 보면 어렷을 적 둘리와 친구들을 좋아한 이유는 귀엽고 초능력도 있지만, 우리와 비슷한 아이들이란 점 때문이었다. 저마다 각자의 능력이 있지만 길동 아저씨의 불호령에 도망가고, 집 담벼락, 놀이터에서 아저씨가 자기만을 기다렸다 들어가는 등 영락없는 아이들이다. 나와 달랐던 건 집도 없고, 엄마도 부재한 점이었다. 그래서일까 매번 둘리 머리에 혹을 생기게 하고, 친구들을 쫓아내거나 매번 신경질을 내는 길동 아저씨가 미웠고, 그런 어른들이 되려 아이들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른다. 


영화 <아기 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 CJ CGV 페이스북 캡쳐


극장판에도 보면 “어린이를 때리는 어른은 큰 병이 있는 거래요. 아저씨는 어린이를 때렸으니까 병 걸려 죽을 거야”, “빨리 어른이 돼야 이런 수모를 겪지 않을 텐데” 등 길동 아저씨를 포함한 어른들을 향한 아이들의 외침이 대사에 삽입되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뭘 그 렇게 하지 말라는 게, 뭘 그렇게 제대로 하라는 게 많았는지. 나 또한 어른들의 잔소리 횡포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둘리와 친구들은 나와 같은 처지였고, 혼날지언정 대차게 얘기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그 모습은 어린 마음에 작은 위안이 된듯하다. 


영화를 보니 어렸을 적 둘리와 친구들을 봤을 때 얻었던 감흥과 재미는 더 커졌지 작아지지는 않았다. 대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왜 어른들은 아이들의 꿈을 펼치지 못하게 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말을 귀담아듣지 않으려고 할까. 아이들이라고는 하지만 고민과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1990년 초 영화 <키드캅> <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 등 어른들의 말에 반기를 든 영화가 개봉하고 많은 사랑을 받은 것 또한 <아기 공룡 둘리>와 유사한 내용과 성격이 한몫했다고 본다. 


영화 <아기 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 워터홀컴퍼니(주) 제공


어른이 된 지금, 과거 둘리의 친구로서 아이들에게 잘하고 있을까 물어보면 안타깝게도 NO! <아기 공룡 둘리>와 여타 영화를 모두 좋아했던 1인으로서 어른이 되면 아이들에게 잘해줘야지 마음먹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나 또한 그때의 어른처럼 듣기보다 말이 앞서고, 잔소리 폭격을 가한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한다. (’둘리’ 보다 ‘신비아파트’를 더 좋아하는) 딸을 사랑하지만 그 표현을 잘 못한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변명일까. 순수한 마음을 가졌던 시기를 거쳐온 사람임에도 그 이해의 폭은 더 좁아진 듯하다. 


영화 <아기 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 워터홀컴퍼니(주) 제공


아이러니하게도 이해의 폭은 그렇게 미웠던 길동 아저씨에게는 넓어졌다. 길동 아저씨를 이해하면 어른이 된 거라고 하는 게 유행할 정도로, 아이에서 어른이 되고, 아이들의 아빠가 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보니 길동 아저씨의 피로를 충분히 이해한다. 느닷없이 집에 쳐들어와 밥을 축내고, 말썽만 피우고, 친구들을 데려오고, 휴일에 쉬지도 못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영화에서 얼음별에 평화를 가져온 대단한 일을 했음에도 그다음 날 출근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무단결근으로 상사에게 혼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절로 측은해진다. 


과거 미워했던 이 쌍문동 아저씨를 이젠 미워할 수 없는 건 어떻게든 둘리와 친구들을 자기 집에서 지내게 했다는 점이다.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은 작은 선의가 실종된 지금, 1980년대 아재의 작지만 소중한 배려는 더 대단해 보인다. 열심히 일해 집 한 채 마련한 자수성가 스타일의 아재가 방 한 칸 내어준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 아닌가!  


영화 <아기 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 워터홀컴퍼니(주) 제공


둘리와 길동 아저씨가 새롭게 보인 이 시점에서 둘리의 아버지 김수정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어릴 때 봤던 둘리의 모습을 지금도 간직하면 좋겠어요. 천진하고 낙천적이고 때에 따라 정의를 위해 저항도 하는 그런 순수한 모습을 잊지 않길 바라요.”라고 전했다. 이 작품에 향수를 가진 이들이 모두 길동 아저씨의 나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예전 순수했던 동심은 잊지 말라는 그 말. 쉽지 않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아이다움을 잊지 말아야겠다. 물론, 둘리를 보고 싶다는 아빠의 말에 선뜻 극장에 함께 간 우리 딸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야한다는 생각도 잊지 말아야겠지만.




평점: 3.0/ 5.0

한줄평: 요리 보고 조리 봐도 반가운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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