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 리뷰
* 이 글은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재난 영화인데, 재난 영화라 부를 수 없다? <대홍수>는 SF 재난 장르의 작품이지만, 결국 모성애로 귀결되는 작품이다. 무늬만 재난 영화라 부를 수도 있는 이 작품의 연출은 <더 테러 라이브> <전지적 독자 시점> 등을 만든 김병우 감독이다. 감독의 이름을 들으면 이 영화가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해지며, 일말의 기대도 할 만 하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대홍수급이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아침, 아파트가 물에 잠긴다. AI 개발자이자 싱글맘인 안나(김다미)는 아들 자인(권은성)을 데리고 생존하기 위해 아파트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전화로 연락했던 인력보안팀 희조(박해수)를 만난다. 그는 이번 사태가 인류에게 닥친 재앙이라 알리고, 안나가 인류를 구할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한다. 단, 자인을 두고 홀로 가야 한다는 조건을 듣는다. 안나는 인류의 미래와 자신의 아이를 놓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바닷물은 점점 차오른다.
김병우 감독의 작품을 살펴보면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재난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이 그려진다. 감독은 이런 상황에 놓인 인물들을 통해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윤리적·도덕적 가치관이 유지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는 테러범과의 전화 통화를 독점 생중계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기회라 여기며 마포대교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방송하는 영화(하정우)의 모습,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는 멸망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사람들과 이와 반대로 협력하며 난관을 헤쳐나가는 독자(안효섭)의 모습 등이 대표적이다.
두 작품을 미뤄봤을 때 감독은 마치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난 상황을 설정 후,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과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다. 특히 주인공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는데, 그때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충돌을 보여주고, 무엇을 선택하는지에 대한 과정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철학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이런 감독의 연출 특성은 <대홍수>에서도 이어진다. 물이 차오르는 재난 상황을 설정했지만, 그 부분은 단지 설정일 뿐, 영화에서 중요한 건 자신이 혼자 살아 나갈 것인가? 아니면 아이와 함께 지구에 남을 것인가다. 다수의 엄마라면 전자보다는 후자를 선택하거나 자신은 여기에 남겠으니 아이만 살려달라고 했을 것이다. 영화는 이런 부분을 생각했는지, 아이가 자신이 직접 낳은 아이가 아니라는 설정, 그리고 이 아이를 살리기 위해 남편이 죽음에 이른 전사를 소개한다. 이런 설정들로 인해 극 중 안나가 겪는 딜레마가 심화된다, 다시 말해 낳은 정이 아닌 기른 정만으로도 모성애가 성립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 주제를 기반으로 영화는 계속해서 안나의 모성애에 대한 가혹한 시험은 계속된다. 전반부 생존을 위해 옥상까지 올라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일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에 갇힌 소녀의 존재, 출산이 임박한 산모의 등장은 그녀로 하여금 엄마로서 갖는 사랑과 죄책감을 가중시킨다. 더불어 중반을 지나 초반부 재난 상황과 반복되는 사건이 AI 딥러닝 과정이었다는 설정이 더해지면서 모성애를 향한 감독의 탐구는 더 가속화된다.
중요한 건 모성애라는 인간성 탐구가 재난 장르의 잘 이어 붙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병우가 감독의 작품 중 관객과 평단의 지지를 얻은 작품은 <더 테러 라이브>였다. 이 작품과 <대홍수>가 가장 다른 점은 재난 소재의 활용에 있다. <더 테러 라이브>의 마포대교 재난 상황은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 그들의 생명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느끼게 하면서 현실 재난의 접점을 키웠다. 하지만 <대홍수>는 현실이 빠진 재난이 주를 이룬다. 기능적으로 물 재난을 활용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따라 보는 이들은 이 상황에 대한 공포감과 긴장감이 계속해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 안나가 아이를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빗어지는 사건들도 현실감이 결여되면서 적극적인 공감을 얻지 못한다.
후반부 모성애를 만들기 위해 AI 딥러닝 과정은 영화의 반전이자 킥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엄마가 처음이라는 점에 기인해 반복 학습을 통해 모성애가 길러진다는 설정을 AI 딥러닝으로 치환해 보여줬다는 점은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이 전환은 놀라움보다는 당혹스러움을 안기며 전반부의 상황과 어떻게 매칭해야 할지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첫 모성애 연기를 펼친 김다미는 나름대로 역할에 충실한 감정선을 가져가며 극을 이끌지만, 영화의 구조적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한다. 모성애를 보여주기 위한 기능적인 캐릭터의 옷을 입고 연기를 했다고 할 수 있는데, AI 캐릭터까지 연기해야 하는 삼중고에 힘겨운 모습이 역력하다. 새로운 도전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그 결과물은 아쉬움을 남긴다.
야심은 좋았다. 그리고 SF 재난 장르를 통해 모성애를 탐구하려는 감독의 의도도 알겠다. 하지만 장르의 장점을 기능적으로만 활용하면서 철학적 난제를 풀어나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전작인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도 비슷한 문제로 관객의 냉대를 받지 않은가. 계속해서 재난을 활용한 인간성 탐구에 매진하고 싶다면 초심으로 돌아가는 건 어떨까? <더 테러 라이브> 때가 그립다.
사진 출처: 넷플릭스
평점: 2.0 / 5.0
한줄평: 모성애로만 끌고 가기엔 버거운 재난 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