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그들이 타이론을 복제했다> 리뷰
(이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일이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에 왔지만, 사회와 동떨어진 이곳에서 버티는 건 쉽지 않았다. 마치 내 개성은 가지치기로 다 잘라버리고, 다 똑같은 군인으로 찍어내는 기분이었다. 단체 생활이고 나라를 지킨다는 큰 명목하에 이를 따랐지만, 그럼에도 내 이름 석 자가 지워지는 느낌은 다시 경험하고 싶진 않다. 다행히 군대라는 곳은 복무기간이라는 게 있었기에 제대 후 본 모습을 찾았다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로 돌아왔다.
군대라는 조직을 혐오하지 않는다. 다만, 좀 더 빠르게 개성을 가진 인간들을 멋진 군인으로 키워내기 위한 시스템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군대를 갔다 온 이들은 이 마음을 당연히 알 것이고, 더불어 마을의 사악한 음모를 알게 된 <그들이 타이론을 복제했다>의 마약 갱, 포주, 성 노동자도 이해할 것이다.
마약 갱 폰테인(존 보예가)은 매일 똑같은 삶을 반복한다. 일어나서 수금하고 편의점에 들러 담배, 복권, 술을 산 후 집으로 귀기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영역 다툼을 하던 상대 마약 갱단이 쏜 총에 맞는다. 하지만 그 다음 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 폰테인. 그가 죽은 걸 몰래 지켜본 포주 슬릭(제이미 폭스)과 성 노동자 요요(티욘 패리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놀라고, 엉겁결에 자신을 닮은 누군가가 납치된 현장을 목격한 폰테인을 따라 의문의 집을 무단 침입한다. 허름한 외관과 달리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가보니 복제 인간을 만들고 있었던 것. 정부 지시 아래 행해진 이 프로젝트를 알게 된 세 사람은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서로 손을 잡는다.
이거 <시계 태엽 오렌지>야! 그리고 표적은 우리지
<그들이 타이론을 복제했다>는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의 자장 안에 있다. 극 중 지하 세계의 실체를 알게 된 슬릭이 하는 이 말은 대 놓고 <그들이 타이론을 복제했다>가 <시계태엽 오렌지>의 흑인 버전이라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대사를 더 생각해 보면 <시계태엽 오렌지>의 이야기는 계속 존재해왔으면 이번엔 우리가 표적이라는 말로도 들린다.
1962년 앤서니 버지스의 동명 원작을 <시계태엽 오렌지>는 묻지마 폭행, 집단 싸움, 차량 절도, 무단 침입 등으로 살인죄가 적용된 10대 ‘알렉스’가 사회 갱생 프로그램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스탠리 큐브릭의 문제작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높은 수위는 물론, 범죄 본능을 약물과 충격요법으로 치료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꾼다는 설정이 큰 이슈였다. 기계로 눈을 잡고 교화 영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나 인위적인 윤리 교육을 통해 알렉스는 변화하지만, 이 과정은 그리 유쾌하지 않고 결말에 가서는 딜레마를 안긴다. 시쳇말로 알렉스는 인간 말종이지만, 누구의 허락을 받고 정부가 인간 고유의 본능을 좌지우지한다는 건지, 그럼 더 좋은 사회가 열릴 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때문이다. 결말은 직접 확인해 보시길.
실험대상인 알렉스처럼 세 주인공을 비롯한 이 마을 사람들은 정부의 비밀스러운 프로젝트의 대상이 된다. 프로젝트의 실체는 바로 흑인을 백인으로 만들려는 것! 정부는 마약, 매춘, 절도, 살인 등 주로 흑인들이 주범이라고 생각한 정부는 이들을 백인으로 만들면 사회 문제가 현저히 낮아질 것이라는 판단하에 이 프로젝트를 암암리에 진행한다.
흑인들이 좋아하는 치킨, 자주 사용하는 파마 크림, 매일 듣는 힙합 음악, 매주 가는 교회에 두뇌를 자극하는 요소를 몰래 집어넣고, TV, 라디오, 포스터 등으로 광고를 하며 흑인들을 끌어모은다. 아무 생각 없이 이것들을 취한 흑인들은 한순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인형이 된다. 그리고 지하에서 이들을 지켜본 백인들은 테스트 데이터를 통해 백인으로 만드는 고도화 작업을 착착 진행한다. 물론, 폰테인, 크릭, 요요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시계태엽 오렌지>를 필두로, <이퀼리브리엄> <더 기버: 기억전달자> 등 사회의 통제를 위해 개인의 고유 성격(혹은 감정)을 발로 걷어차는 내용의 영화는 많았다. <그들이 타이론을 복제했다>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인종까지 통제한다는 내용으로 더 나아간다. 흑인을 백인화한다는 설정은 곧 백인 우월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으로도 읽힌다. 아직도 미국 사회 내에서 흑인 인종차별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이 영화는 이런 행태에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반기를 드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그들이 타이론을 복제했다>는 블랙스플로테이션(blacksplotation) 장르 영화라 말할 수 있다. 미국 흑인 관객을 타깃으로 만든 흑인 영화라 할 수 있는데, 제작진, 주요 출연진 모두 흑인인 경우가 많았다. 이 영화 또한 이 장르에 입각해 블랙 무비의 힘을 보여준다. 흑인 특유의 억양과 바운스, 총보다 더 무서운 말싸움, 아프로 머리스타일 등 흑인 영화의 맛을 느끼게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절대 팀으로 묶이지 않을 세 주인공이 뭉치는 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암시한다. 바로 연대다. 서로가 착취의 대상이었던 이들의 관계는 정부 프로젝트를 안 뒤로 서로 협업을 이뤄 보기 좋게 한 방 먹인다. 이들의 연대는 더 나아가 폰테인의 적이었던 상대 갱단을 물론, 지하 실험실에 갇힌 복제인간들에게도 전파된다. 그리고 TV 생중계를 통해 미국 전역에 있는 흑인들에게 실상을 보여주고 연대를 요청한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갖고 있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정과 이를 풀어내는 재미는 쏠쏠하다. 예상 가능한 결말이 다소 아쉬움을 남기지만 세 캐릭터의 티키타카는 이를 상쇄시킨다. 불도저와 같은 성격의 폰테인을 중심으로, 몸 보다 말이 먼저 나가는 슬릭과 보기와 다르게 추리 능력이 남다른 요요의 케미는 웃음과 흥미를 전한다. 특히 존 보예가, 제이미 폭스, 티요나 패리스 모두 전작에서 보지 못했던 연기를 보여주며 영화의 맛을 살린다.
흑인을 백인화한다는 소재는 먼 나라 얘기이고, 흑인이 아닌 이상 각 상황과 대사에 녹여진 사회 비판 메시지를 간파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플레이 버튼을 누르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갖가지 사회 문제를 방관하는 정부를 향해 일침을 가하는 부분, 연대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자는 메시지는 인종, 국가,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이다. 아! 제목에 등장하는 타이론은 언제 나오냐고? 영화를 끝까지 보면 알 수 있다!
평점: 3.0 / 5.0
한줄평: 컬러만 바꾸면 좋은 세상이 열리나요? 안 열려요!
(이 리뷰는 ’헤드라잇’에 쓴 글을 재편집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