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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Aug 03. 2023

자칫 ‘버블’이 될 수 있는 여성 스토리

Apple TV+ 영화 <더 버니 버블> 리뷰

실화 그리고 여성. 극장, OTT 오리지널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된 지 오래다. 그만큼 이 두 소재로 많은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건 변화하는 사회의 흐름에 맞춰 관객과 구독자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소재를 활용한 영화가 많아짐에 따라 적지 않은 피로감이 쌓이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향후에는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이 떨어질 수도 있는 일. 애플 티비 플러스(Apple TV+) 오리지널 영화 <더 비니 버블>은 이 양가적인 생각을 들게 하는 영화다.  


19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장난감 중 하나가 바로 ‘비니’ 인형이다. 기존에 만들었던 봉제 인형과는 다르게 부드럽고, 컬러풀하고 휴대성도 가능한 이 인형은 거대한 장난감 열풍을 일으켰다. 이 모든 걸 이뤄낸(?) 이는 회사 CEO 타이(잭 갈라피아나키스)다. 색다른 봉제 인형으로 시장 승부를 보려 했던 그는 끝내 성공을 거뒀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옆에는 함께 사업을 시작한 공동 창업자 로비(엘리자베스 뱅크스), 온라인 마케터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마야(제럴딘 비스워너선), 비니 베이비 아이디어를 준 셰일라(사라 스누크) 가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숨은 조력자들의 노력을 휴지 조각으로 안 타이는 비니 버블이 꺼짐과 동시에 꼴 좋게 망한다.



<더 비니 버블>의 제목인 ‘비니 버블’은 1990년대 투자 가치로 급부상한 비니 인형을 너도나도 수집하려는 이들이 모이면서 일어난 인형 열풍이다. (작년 ‘포켓몬빵’ 열풍을 생각하면 될 듯하다.) 물론 제목처럼 그 버블이 꺼지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명암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으로 남게 된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사업 이야기인 셈. 근데 왜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을까?


잭 비소네트의 'The Great Beanie Baby Bubble: Mass Delusion and the Dark Side of Cute'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아메리칸 드림의 허와 실을, 그 이면에 감춰진 여성들의 숨은 노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극 중 타이는 곧 아메리칸 드림과도 같다. 꿈과 이상을 쫓아 진격하는 그는 거대한 수익을 얻게 되지만, 곧 거품이 빠지고 나락의 길을 걷는다.



타이의 추락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그 시작은 초코 우유나 마시고, 이기적인 소년처럼 구는 그는 인적 관계 결함을 보인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람을 만나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그의 행동은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다가도 사주면 금방 싫증 내고 버리는 아이와 별반 차이가 없다. 특히 연인으로 발전하는 셰일라와 그녀의 두 딸 관계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아이들의 아이디어만 취하고 그 이상의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 그의 모습은 이를 잘 나타낸다. 더불어 돈에만 눈이 먼 이 남자의 취미는 성형 수술로 주름을 없애는 것! 비니 버블이 예상되는 시점에도 대외적인 이미지에만 신경 쓰는 타이는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월가(혹은 미국)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더 비니 버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타이의 주변 여성들이다. 조상님의 은덕인지 몰라도 타이와 함께 일을 한 여성들은 하나 같이 최고의 실력자다. 로비는 이 회사의 기틀을 세웠고, 마야는 인터넷 초기 시기에 맞춰 온라인 마케팅으로 수익 증대에 힘썼으며, 셰일라와 두 딸은 비니 베이비의 초기 아이디어 전달자다. 심지어 큰 딸은 비니 베이비 인형 디자인도 참여한다.



중요한 건 영화의 배경이 1980~90년대라는 점이다. 지금보다 더 강한 유리 천장이 존재하는 이 시기에 세 여성은 타이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는다. 해외 진출 교두보로 영국 수출을 도모하려 했던 로비는 곧바로 일선에서 빠지고, 비정규직임에도 온라인 마케팅을 도입해 수익을 극대화한 마야는 회사의 중요 자리를 원했지만, 결과적으로 임금을 조금 올리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셰일라는 타이와 결혼까지 생각했지만, 딸이 고안한 인형 디자인에 이름이 빠진 건 뒤늦게 알게 된다. 한 마디로 세 여성은 타이에게, 남성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게 이용만 당한 셈이다.


그 이후 이야기는 예상대로다. 세 여성은 타이를 향해 어퍼컷을 날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타이에 기대지 않고 자기 능력을 믿고 홀로서기를 감행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요한 역할을 한 여성들이 이별을 고하면서 타이의 사업은 하락세를 면하지 못한다. 반대로 이 여성들은 자신들만의 역사를 쓴다.



그동안 성공의 수면 아래에 있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나는 재미는 쏠쏠하다. 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는 성기다. 세 명의 인물, 특히 로비는 마야, 셰일라와 같은 시기에 맞물려 있지 않기 때문에 타이의 대항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헐겁다. 연합 보단 각개전투 같은 느낌이다. 감독은 적절히 플래시백을 활용해 타이와 어떻게 연을 맺고, 회사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으며,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는지 리드미컬하게 보여주지만, 단점을 메우지는 못한다. 비슷한 소재의 영화인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처럼 가상의 인물이나 사건을 추가하는 등 각색의 묘를 더 살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시의성에 맞춰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존재 자체를 몰랐던 여성들의 이야기는 꾸준히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트렌드에 편승해 차별화 포인트 없이 만들어지는 건 아쉽다. 흡입력 있는 커튼 뒤 여성들의 스토리가 쉽게 휘발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좀 더 가치 있게 보이기 위해서는 고심이 필요해 보인다. 여성들의 이야기가 ‘비니 버블’처럼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PS: <더 비니 버블> 보다 더 먼저 이 사건을 조망한 HBO max 다큐멘터리 <비니 마니아>라는 작품이 있다. 기회가 되신다면 이 작품도 함께 보면 좋을 듯 하다.





평점: 2.5 / 5.0

한줄평: 자칫 ‘버블’이 될 수 있는 성긴 여성 스토리




(이 리뷰는 ’헤드라잇’에 쓴 글을 재편집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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