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코카인 베어> 리뷰
궁금했다. 코카인을 먹은 흑곰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인다는 설정이라니. 그것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고. 한술 더 떠서 제작비 대비 약 2배 수익을 벌어들였다고 하니 그 실체를 더 보고 싶었다. <코카인 베어>를 알고 있었던 국내 관객들은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 하지만 뒤늦게 OTT로 접하게 된 이 영화는 갖고 있던 궁금증과 보고 싶었던 마음을 한순간에 증발시킨다.
맑은 하늘에 왠 스포츠 가방? 조지아주 어느 숲에 다수의 가방이 무차별적으로 떨어진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건 다름 아닌 코카인. 비행기를 탄 마약 운반책이 떨어뜨린 이 위험한 물건은 사람이 아닌 흑곰이 입으로 수거한다. 어느새 마약에 중독된 흑곰은 점점 미쳐가고, 약에 취해 광란의 살육 파티를 시작한다. 이 사실을 모를 채 경찰, 마약 수거 범죄자, 관광객, 10대 등 다수의 사람이 삼삼오오 이곳을 방문한다.
<코카인 베어>의 시작은 1985년 미국 조지아주 숲에 떨어진 코카인을 과다 복용하고 죽은 흑곰이 발견된 사건을 기초로 한다. 이 영화는 헤프닝으로 그친 이 이야기를 가져와 흑곰을 살인 캐릭터로 변형하며, 공포 영화의 외형을 만들어 나가는데, 그 뼈대는 1970~80년대 주를 이뤘던 B급 슬래셔 호러 영화에 두고 있다. 코카인이라는 요소를 제외하면 인간보다 더 힘이 강한 그 누군가가 이유 없이 연쇄 살인을 벌이는 내용인데, 자연스럽게 <13일의 금요일> 시리즈, <할로윈> 시리즈가 떠오른다. 당연히 흑곰은 각 영화의 살인마였던 제이슨, 마이클 마이어스의 느낌이 배어 나온다.
흑곰뿐만이 아니다. 이 숲에 오는 사람들도 과거 B급 호러 영화에 나올법한 캐릭터의 특징을 갖고 있다. 바로 금기를 어기면 죽음(또는 위험)을 면하지 못하는 불문율이 바로 그것인데, 극 중 간호사로 근무하는 사리(캐라 러셀)의 초딩 딸 디디(브루클린 프린스)가 이를 실행한다. 엄마가 위험하다고 가지 말라는 국립 공원 내 폭포를 기어코 간다. 그것도 남자 동급생이랑. 심지어 굴러다니는 코카인도 먹어본다. 물론 바로 뱉어버리지만 말이다. 결국 이런 금기를 어겨버린 결과로 디디와 남자 동급생은 각각 위험에 처한다. 이 밖에도 도덕적 윤리적 결함을 가진 여러 군상은 저마다 불곰의 광기 어린 심판을 받는다.
블랙코미디를 지향하는 영화의 분위기는 살짝 붕 떠 있다. 약을 빤 것 같은 느낌을 관객에게 전하기 위한 감독의 설정일 수도 있겠지만, 마약에 쉽게 노출된 미국의 실상과 그 위험성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위한 장치로 보인다.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하다가 흑곰의 위협에 비로소 생명 부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들의 모습은 측은함을 자아낸다. 더불어 이 위험은 곰이 아닌 인간의 욕심으로 자행된 일이라는 점은 씁쓸한 여운을 전한다.
아쉬운 건 이 여운이 길지 않다는 점이다. 블랙코미디를 지향하지만 즐비한 농담 사이로 오가는 헛헛한 웃음은 지나치게 지속되고, 이내 치사량이 넘어 버린다. 슬래셔 장르에 입각해 사지절단 등 강한 수위 장면들이 계속해서 나오면서 마니아 관객들에게는 만족감을 줄 수 있지만, 그럼에도 호러 영화의 재미가 높은 편도 아니다. 다소 많은 것 같은 인물들이 불곰에 의해 하나씩 사라져 가는 과정은 과연 누구 생존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과 긴장감을 유발하지만, 뭔가 조여오는 공포 보다는 단발성 공포가 즐비한 편이라 이 또한 재미가 반감된다. 블랙코미디와 호러의 혼성 장르를 표방했지만,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이 나온 셈. 결은 좀 다르지만 슬래셔 장르와 오피스 물의 절묘한 조합을 보여준 크리스토퍼 스미스의 <세브란스>(2007)만큼의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지는 못했다.
완성도를 떠나 연출을 맡은 엘리자베스 뱅크스는 이 영화를 성공시켰고, 이를 예상했는지 속편을 암시하는 쿠키 영상을 삽입했다. 그것도 2개나. 다음 편 주 무대는 숲도 아니고 곰도 아닌 듯하다. <코카인 베어>를 재미있게 봤다면 속편도 기대해 보시길.
평점: 2.5 / 5.0
한줄평: 독특한 설정이란 약효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영화 <코카인 베어> 넷플릭스는 물론, 쿠팡플레이, 네이버 시리즈온, 웨이브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뱅크스의 매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