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똑똑똑> 리뷰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관통한 약 3년 4개월, 우리의 삶은 무너졌다. 사회 시스템이 마비되었고, 질병에 따른 공포와 이에 따른 희생이 속출했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에서 우리는 엄습하는 공포에 잠식되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상황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건 정체 모르는 질병이 아닌 그 질병이 가져온 공포로 인해 벌인 선택과 결과값이다. <똑똑똑>은 하나의 선택이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 더 나아가 인구 전체의 삶과 죽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설정을 통해 코로나19를 관통한 우리의 딜레마를 전한다. <올드>에 이어서.
동성커플인 에릭(조나단 그로프)과 앤드류(벤 알드리지)는 입양 딸인 웬(크리스틴 쿠이)과 외딴 오두막에서 휴식을 보낸다. 하지만 꿀 같은 시간도 잠시, 이들에게 레너드(바티스타)를 필두로 네 명의 낯선 불청객이 찾아온다. 그리고 이들에게 가족 중 한 명을 선택해 직접 죽여야 인류에게 닥친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선택을 거부하면 세계 여러 곳에서 재앙이 발생하고, 많은 수의 사람이 죽는다고 덧붙인다. 네 명의 불청객은 계속해서 이 가족의 희생을 설득하지만, 결국 응해지지 않자, 이 중 한 명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죽음에 이른다.
<똑똑똑>의 미스터리 골자는 인류와 가족을 사이에 두고 어느 쪽을 구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즉,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맞는지, 소를 위한 대의 희생이 맞는지에 대한 딜레마다. 인류를 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가족의 죽음이 필요한 상황을 설정한 감독은 관객에게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이 딜레마는 전작 <올드>에서도 이미 전달한 바 있다. 인류를 위한 목적 아래, 동의 없이 해변에 갇혀 빠른 노화를 경험하는 이들의 죽음은 큰 범주 안에서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 볼 수 있다. 중요한 건 이 희생이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뤄졌다는 것, 그리고 인류를 위한 일이지만, 중간에 이익을 탐하는 제약회사의 이익 추구를 위한 목적 아래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실험실 쥐와 같은 삶을 산 이들의 희생은 대의를 상실한 채 증발해 버린다.
<똑똑똑>은 전작의 해변과 마찬가지로 휴식처인 오두막이 갑자기 공포의 공간으로 돌변하고,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마치 <올드>의 연작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같은 결의 희생을 소재로 하지만, 타의가 아닌 자의로서 가족과 인류를 위한 희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초반 가족과 불청객들 간의 불신과 의심이 팽배해지면서 갈등이 심화되지만, 이내 이 갈등은 가족 안에서 그리고 개인 안에서 벌어지고, 그 결과로 희생을 결정하게 된다. 전작과 달리 외부요인이 아닌 자신의 결정이란 점에서 그 고결함이 부각된다.
샤말란 감독은 이 연작을 통해 희생은 사회적 강압과 누군가의 의해 결정짓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가족, 그리고 인류를 위해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비롯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똑똑똑>은 코로나19의 시대를 버티고 이 기나긴 터널의 끝에 나올 수 있었던 건 언제 어디서 이름 모를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덧붙인다. 이성애자건 동성애자건,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백인이건, 동양인이건 간에 말이다. 영화는 다시 평화로운 세상이 도래한 것을 보여주며, 이 희생자들을 한 번쯤 생각하고 그들을 기리기 위한 여운을 남긴다.
물론, 이 영화의 단점은 명확하다. 급박한 상황을 닥치게 한 후, 생각할 겨를없이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주요 인물들 감정을 따라갈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플래시백을 통해 가족이 되기 위한 험난한 여정, 그리고 그 안에 끈끈한 유대감을 부여하지만, 급변하는 심리 변화에 쫓아가지 못한다. 레너드를 포함한 네 명의 불청객은 묵시록의 네 기사처럼 보이는데, 그 의미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자해와 자살 등 신념에 의한 불청객들의 결단 등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장면들로 긴장감을 조성하지만, 그마저도 후반부에 가면 갈수록 그 힘이 바닥난다. 방식은 다르지만 전형적인 스토리 라인으로 반전을 꾀하지 못한 <올드>와 함께 전체적인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똑똑똑>과 전작 <올드>를 통해 코로나19가 가져온 혼란과 공포, 희생의 의미를 영화에 담은 샤말란 감독의 의도와 기획은 그 의미를 더한다.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재난과 질병의 위험에서도 그 균형을 맞춰간다는 것을 두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면 절반은 성공한 게 아닌가.
평점: 3.0 / 5.0
한줄평: 고결한 희생만이 세상의 균형을 만드노니
영화 <똑똑똑> 넷플릭스는 물론, 쿠팡플레이, 네이버 시리즈온, 웨이브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