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리멘탈> 리뷰
누적관객수 718만명 돌파. <엘리멘탈>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을 제치고 올해 개봉한 애니메이션 중 가장 높은 스코어를 기록했다. 북미도 픽사 작품 중 사상 최악의 첫 주 스코어를 냈지만, 개봉 22일차를 지난 후 1억 달러 고지를 넘었다. <엘리멘탈>은 시간이 좀 지난 후, 그 진가가 발휘되었다. 이는 작품의 완성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영화가 지닌 태생적 이유 때문이다. 엠버와 웨이드 사랑, 불과 물의 융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이 긍정적 변화가 사회 전체를 바꾸는 과정 또한 오랜 시간이 걸릴 터.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고, 물은 건너 봐야 알고 사람은 지내봐야 안다는 말이 떠오른다.
불, 물, 공기, 흙 4개의 원소들이 모여 사는 ‘엘리멘트 시티’.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이 땅을 처음으로 밟은 이민자들에게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불꽃 엠버(레아 루이스) 또한 교외 어느 폐가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며 살아온 이민자의 딸이다. 매사 열정이 넘치고, 열심히 부모님을 도와 상점을 운영하지만, 화가 나면 폭발하는 문제가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실 파이프에 물이 새고, 그 틈으로 물 웨이드(마무두 마티)가 들어온다. 이들은 작은 헤프닝을 겪으며 서로 가까워지고, 우정을 넘어 서로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이내 장벽이 생긴다. 물과 불은 결코 융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물과 불이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엘리멘탈>의 피터 손 감독은 이 질문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었다. 극중 엠버와 웨이드는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이들은 서로 만지거나 안아줄 수 없다. 물과 불은 상극이기 때문이다. 멜로 영화에서 남녀 간의 장애물은 크면 클수록 좋은데,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더불어 미국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물은 백인이자 상류층, 불은 이민자 계열이자 하류층을 표방한다. 아무 걱정 없이 잘 자란 웨이드에 비해 엠버는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주변에 민감하다. 특히 지하철에서 후드를 뒤집어쓰고 한구석에 서 있는 장면만 봐도 이들의 차이를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둘의 사랑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초반 상극인 원소의 전사를 잘 쌓는데 주력한다.
이는 멜로 라인을 더 두텁게 하는 요소로도 작용하지만, 한편으로는 엠버의 홀로서기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구실로도 작용한다. 영화는 한국계 이민 가정 2세대인 피터 손 감독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했다. 이민자로서 온갖 차별을 겪으면서도 이겨낸 부모님 세대, 그들의 바람을 이뤄야 하는 중압감을 달고 살아야 하는 2세대들의 모습은 이 영화에 잘 투영되어 있다. 엠버 또한 상점 운영이 자신의 운명이라 믿었지만, 웨이드를 만나기 전 진정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 없다. 결국 자신과 다른 삶을 산 이와의 교감을 통해 진정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이루고 싶어 하는지를 알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이 작품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아시아 디아스포라 영화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비친다.
피터 손 감독은 전작 <굿 다이노>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에게 험난한 여정의 길을 걷게 한다. 전작에서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가는 여정을 그렸다면, <엘리멘탈>은 그 반대로 홀로서기 여정을 담았다. 서로 다른 방향의 여정을 그렸지만, 두 영화 모두 한국계 이민자로서 느끼는 가족, 외로움, 정체성과 생존에 대한 고민이 녹아져 있다. 마치 감독의 겪었던 경험과 고민의 흔적이 작품에 남겨진 것처럼 말이다.
자연스럽게 이런 고민은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어필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K 장녀 스타일이었던 엠버의 모습, 특히 부모님이 실망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나 어떻게든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들은 공감을 이끌어내기 충분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엘리멘탈> 또한 이야기를 단순화 시킨다. 서로 다른 원소이자 인종이자 문화권의 두 사람이 결국 사랑으로 결실을 맺는 이야기가 돋보이는 효과를 준다. 원소의 차이, 문화의 차이, 성격의 차이 등 극과 극을 달리는 이들은 하나씩 그 접점을 찾아가는데, 워낙 난관이 많아 뜨거운 사랑의 끓는점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서로 손을 맞대고 사랑의 포옹을 나눌 때 감동이 물밀듯 밀려온다.
물론 불과 물의 융합만큼이나 엠버와 웨이드 사랑만큼,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큰 사건이 결여된 채 마무리되는 건 아쉬움을 남긴다. 공룡과 인간의 우정, 가족의 소중함을 소소하고 담백하게만 그렸던 <굿 다이노>의 단점이 이번 영화에도 반복되는 느낌이다. 주인공들의 사랑은 위대하고, 이들의 홀로서기가 중요하지만, 이들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로 이어지고, 그 결과물이 가시적으로 보였으면 하는 바람은 픽사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더 보여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단점을 메우듯 원소의 특징을 잘 살린 캐릭터들의 모습과 엘리멘탈 시티의 멋진 풍경으로 이 상쇄하지만, 그 아쉬움이 모두 채워지는 건 아니다.
한 인터뷰에서 피터 손 감독은 ‘작은 변화가 사회 전체를 변화시킨다’라는 말을 했다. <엘리멘탈>에서 이뤄지는 엠버와 웨이드의 사랑은 작은 변화일 수 있지만, 그 결합이 양극화 되어가고 있는 사회, 특히 미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단초가 되기를 희망하는 말처럼 들린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처럼 피터 손의 다음 작품은 이를 기반으로 한 큰 이야기가 되었으면 한다.
평점: 3.5 / 5.0
한줄평: 우리의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은 불씨가 되시니!
영화 <엘리멘탈>은 디즈니플러스는 물론, 네이버 시리즈온, 웨이브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리뷰는 ‘헤드라잇’에 쓴 글을 재편집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