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 Jo Jun 27. 2023

분노

이상일(2017)

재일교포 3세 이상일 감독의 영화 분노는 시종일관 범인을 쫓아가는 추리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감독은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일에 힘을 쏟지 않는다. 다만 3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풀어가면서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신뢰라는 감정을 과연 얼마만큼 신뢰하고 있는가?


불타오르는 태양이 내리쬐는 오키나와의 숨 막히는 배경,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그대로 전달하는 애틋한 피아노 배경음, 그리고 하나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찬 살인, 성매매, 강간, 동성애라는 소재를 연달아 등장시키는 연출은 왜 영화가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에 의심이 한겹 한겹 쌓이면서 감정의 파동이 일어나다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과 분노로 이어진다. 여기서 분노는‘믿었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는’상대방에 대한 분노도 있지만, 너무 쉽게 자신의 신뢰가 분노로 변해버린 것에 대한 스스로의 분노도 포함한다. 


영화는 평범해 보이는 추리소설의 기법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전개 과정과 결말은 사뭇 진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의심했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엄청난 열에너지를 지닌 분노가 이미 만들어져버린 이상 그걸 우리는 어떻게 감당하고 살아야 하는가? 아무도 도와주지 않기 때문에 죽을 만큼 괴로운 마음을 안고 계속 버텨야 하는가? 


세 가지 이야기의 결론이 재회와 죽음, 복수가 뒤섞여 있는 만큼 감독도 명확한 해답을 제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사실 우리네 삶 자체가 명확한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런 물음들을 던질 수 있게 하는 것도 영화가 가진 위대한 힘이다. 뛰어난 미장센과 음악, 배우들의 연기와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문제 제기. 


오랜만에 이 모든 것들이 골고루 균형 잡힌 매혹적인 영화였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작가의 이전글 상실에 대처하는 현대 일본 영화의 흐름, 그리고 변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