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느지막에 깨달은 삶의 정수
개그콘서트가 끝나는 일요일 저녁 10시 언저리. 초등학교에 다닐 때면 이 시간이 오는 게 참 두려웠죠. 내일이면 학교를 가야하니까요. 별거 아닌데, 어차피 일주일, 한 달, 1년은 이런식으로 영원한 쳇바퀴처럼 돌고 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뭔가 허전하고 싫습니다.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가끔 이 일요일 저녁이 바로 노년기에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합니다. 뭔가 허무하고, 뭔가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고, 착 가라앉은 가슴으로 책상에 앉아 책을 이리저리 들춥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까지 무얼 이뤘나?' 라고 생각하며 말이죠.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을 읽으면 바로 일요일 오후 10시가 생각납니다. 영국의 명망있는 귀족이자, 외교계의 실세인 달링턴 경의 저택에서 집사 입을 하면 스티븐슨. 이 소설은 그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수십년 만에 홀로 여행을 떠나며 소설은 시작합니다.
스티븐슨은 여행 길에 만난 이름 모를 길목에서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떠올리며 반추합니다. 오직, 달링턴경을 위해 일하며 자신의 삶에 한 점의 의심도 품을 것 같지 않던 그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실 자기 자신에게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었죠.
그 질문은 바로 '나 정말 잘 산 건가?'입니다. 그가 존경하던 달링턴경은 세계 2차대전이 끝날 무렵 독일의 나치에게 협력한 배신자로 낙인 찍힌 사람입니다. 주인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는 공식으로 살던 집사 스티븐스은 처음에는 주인이 배신자라는 사실을 애써 부인했지만,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주인을 의심하면 의심할수록 그에겐 한 가지 생각이 유령처럼 따라붙습니다. '주인의 인생이 만약 실패한 삶이라면 그를 위해 헌신했던 내 삶은 어떻게 된다는 건가?'라고 말이죠. 주인이 실패한 삶을 산 이상 그의 인생도 자연스레 물거품처럼 실패한 인생이 되는 거죠.
그의 삶은 맹목적이었습니다. 달링턴경이 언젠가 "유대인을 우리 집에서 모두 내쫓아야겠소"라고 말할 때, 그는 그의 결정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 주인의 말에 따릅니다. 그는 '주인이 잘못된 선택을 할리 없어. 나보도 유능한 사람이니 다른 생각이 있을꺼야'라고 생각합니다. 의심 없이 권위에 복종하죠.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에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별다른 비판없이 나치의 명령에 따랐던 아이히만을 비판했듯이, 집사 스티븐슨도 무비판적으로 주인의 말을 받아드립니다. 인생을 자신의 손으로 선택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본인 스스로 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이 바로 그의 첫번째 잘못이죠.
그러나 누구나 잘못을 저지릅니다. 후회할 짓을 몇 번이고 저지르는 것이 인간 아닌가요? 그가 회피해오던 지난 날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고 있을 때 카페에 있는 노인을 우연히 만나 고백합니다. "난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긴 세월 그분을 모셔 내가 뭔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죠."
카페에 앉아 스티븐슨의 회한을 듣고 있던 노인이 나지막하게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지나온 나날을 뒤 돌어봐선 안됩니다. 우리 다 청춘이라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앞을 보고 전진하는 거요. 저녁은 하루 중 가장 좋은 때에요."
그의 위로에 스티븐슨도 동의하게 되죠. '언제까지 뒤만 돌아보며 내 인생이 바랐던 대로 되지 않았다고 자책한들 무슨 소용인가. 내 인생이 택한 길을 왜 이렇게 하지못했던가 끙끙대는 게 무슨 소용이겠는가.'라면서요.
그리고 스티븐슨은 희망에 차 말합니다. "나같은 사람은 진실되고 가치있는 일에 작으나마 기여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요.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서로에게 농담을 건네고 환하게 웃고 떠드는 행인을 보며 생각합니다. '이 순간에도 행인은 서로 우스갯소리를 주고 받지 않나. 내일 달링턴 저택으로 돌아가면 '농담'이라는 새로운 임무에 메달리겠다'고 말이죠.
집사 스티븐스는 인생의 중요 순간에서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며 살아왔습니다. 유대인을 추방하는 일에 사유하지 않고 동의하고, 자신의 마음이 동하던 여인을 직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이유로 저버립니다. 그런 그의 삶은 후회로 점철돼 있습니다. 그도 그런 선택이 잘못됐다는 점을 알고 있죠.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노인이 됐고 사랑하던 여인은 어느 한 가정의 중년 여성이 됐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한 선택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 과거로 되돌아가 달링턴 경에게 제대로된 조언을 할 수도 없고, 이미 다른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가 된 여인과 다시 사랑에 빠질 순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게 단 하나 있습니다. 그의 앞에 남아있는 시간입니다. 후회로 점철된 삶일 지라도 자신의 삶을 고칠 시간이 충분하다고 그는 생각하죠. 혹시 여러분들도 우울감에 빠져있으면 이 책을 보고 용기를 냈으면 합니다.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 보이는 삶이라도, 혹은 후회되는 삶을 살았을 지라도, 우리에겐 남아있는 나날들이 있으니까요.
PS.
글을 쓰고나니 정말 일요일 저녁 10시가 됐습니다. 좋은 책을 소개하는 건 왠지 가슴 뿌듯한 일입니다. 아직 소설의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가시지 않습니다. 다만 시대와 장소의 배경이 영국 1940년대 전후라는 점이 한국 독자에게는 생소할 수 있습니다. 소설의 처음 부분에는 약간의 인내심을 필요합니다. 처음 몇 장만 인내하면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작가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