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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Aug 07. 2020

일이 즐겁지 않다

이 즐겁지 않다고 하면 다들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원래 일은 재미없는 거야"

맞다, 정말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일은 즐겁지 않을 것 같다. 대개 시키는 일을 억지로 하니까. 그런데 나는 일이 재미있었다. 물론 모든 일이 즐거웠던 것은 아니다. 다만, 10가지 일이 있다면 최소 1가지는 재미있었다. 만나는 사람이라든지, 일을 하면서 새로 알게 되는 지식이라든지, 백지에서 시작된 보고서가 꽉 채워졌을 때의 희열이라든지. 그런 즐거움이 있었기에 일이 즐겁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 일이 너무 즐겁지 않다. 그런 작은 즐거움들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즐겁지 않다. 원초적인 질문에 부딪혔다. "내가 왜 해야 하는데?"

왜 하긴. 일은 월급 때문에 하는 거다. 그런데 일이 자꾸 하는 사람에게만 몰린다. 월급 때문에 일을 하긴 하는데 일을 10개 하는 사람이나 일을 1개 하는 사람이나 일을 안 하는 사람이나 월급도 같게 준다면? 도리어 일을 적게 하는 사람이 승진 대상자라 고과도 더 잘 받는다면? 그럼 진짜 일에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일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종종 그런 불합리한 상황에 부딪혀 왔지만 그래도 그런 생각이 있었다. '누군가는 알아주겠지. 워킹맘도 이렇게 일을 많이 하고 잘한다는 모습을 보여주자. 그래, 언젠가는 나에게 복이 올 거야.' 하지만 상상하던 복은 오지 않았다. 밀려오는 일들이 더 얹혀졌을 뿐.

정확히 다른 팀원들과 나의 업무 비율이 1:5가 되던 날, 권선징악을 믿던 순박하고 소심한 직장인은 10년 만에 반기를 들었다. "저 못해요. 왜 저만해야 하나요? 그리고 저 이제 일하기 싫어요." 

멋있게, 쿨하게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장님은 아셨을 거다. 부들부들 떨리는 내 목소리를. 그 떨림은 두려움이기도 하고, 분노이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그 멘트들을 삼일 밤낮 연습했다는 사실은 모르셨겠지. 당황하며 어떻게 답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장님의 얼굴이 보였다. 그래도 흔들리지 말자, 다짐하며 준비한 말들은 줄줄 읊었다. '~면 좋겠어요' 따위의 완곡한 표현은 없었다. '해주세요'. 통보이자 요구였다.

결국 업무의 조정을 약속받고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너무나도 허탈했다. 이제까지 상황은 나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게 맞구나. 이렇게 해야지만 되는 거구나.


그런데 무엇보다 내가 슬픈 건 일에 대한 즐거움이 없어졌다는 거다. 때로는 애정으로, 때로는 천덕꾸러기 취급하며 끌고 온 일들. 나는 여태 뭘 해온 걸까. 뭔가 꾹꾹 담겨있던 몸과 마음이 탈탈 털려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다시 일이 즐거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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