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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Aug 11. 2020

퇴사한 그 후배가 생각나는 날

[과장님은 그렇잖아요. 일 주면 다하고 또 일 주면 다하고. 일 잘하니 혼자 일 다하죠. 전 과장님처럼 안 할 거예요.]


메신저가 깜빡깜빡. 부장님께 또 업무 하달을 받고 자리에 앉았더니 후배의 메신저가 저렇게 와 있었다. 아오, 이 녀석이 진짜.


야, 라떼는 말야 일 잘하는 선배를 보면 그 선배를 본받아야지 생각했지, 옆에서 놀고 있는 선배를 보고 저렇게 월급루팡 해야지 생각하지는  않았단다.


그 후배를 보면 '90년생이 온다'가 떠올랐다.  워라밸을 외치며 6시 10분이 되면 10분이나 야근했다며 헐레벌떡 퇴근하고, 일을 곧잘 하다가도  일은 할 필요가 없다며 당당히 얘기하던 녀석.


몇몇 직원들은 건방지고 특이하다며 욕했지만 나는 왠지 그 후배가 싫지 않았다. 나에게호의적인 편이기도 했다. 내가 일에 치여 힘든 날이면 '대박 웃긴 거 말씀드릴까요?' 농담도 치고, 다른 직원들은 안 도와줘도 내 일은 곧잘 도와주던 녀석. 물론 편하단 이유로 나에게 더 가감 없이 말하는  문제였지만.


결국 그 후배는 일은 적게 하고 월급은 그에 비해 많이 준다는 회사로 이직했다. 나보고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핀잔을 주던 그 녀석은  떠나기 직전까지도 나를 놀렸다. '과장님이 제 일까지 떠맡으시는 거 아니에요? 인수인계 미리 해드릴까요?'


사실 그전까지는 후배의 말들이 나름 칭찬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일을 잘한다는 거 아니겠어?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됐다. 나는 그저 호구였던 것을.


지난번 내가 그 일들을 못하겠다고 말한 뒤, 새로 부서 업무분장이 이루어졌다. 신규 업무들과 내 업무 일부가 다른 팀원들에게 배정되었다. 그리고 그  날부터 그들  몇 명은 내 인사를 받지 않고, 나와 말 한마디 섞지 않는다. 음... 업무분장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하면 나의 지나친 비약이려나.


문득 그 후배가 생각났다. 옆에 있었으면 당당히 얘기했을 텐데. "내가 그렇게 말씀드릴 줄은 몰랐지? 넌 내가 그 일들을 다 떠맡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단 말이지." 


그럼 그 후배도 나 때문에 자기에게 일이 넘어왔다며 나를 외면했을까? 아님 '당연히 했어야 할 말을 이제야 한 거냐' 하면서도 잘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줬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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