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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Aug 21. 2020

회사가 미워서 교육을 듣기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욕이 절로 나오는 날이 있다.(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믿는다.) 회사는 월급을 주는 대신 내 체력과 영혼을 쏙쏙 뽑아 먹는다. '아, 더럽고 치사해서. 애도 나도 못 챙기는 마당에, 그냥 관둘까?'


그날다름없이 퇴근 후 녹초가 되어 소파에 털썩 누웠다. 아이에게 TV를 틀어주고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또 다른 생각이 피어올랐다. '그래도 열심히 다녀야지. 대출도 갚아야 되고, 언젠가 쟤 대학도 보내야 하는데...'


그러다가 회사만 내 등골을 빼먹는 것 같아 나도 회사의 뭔가를 빼먹고 싶었다. 한참을 골똘히 궁리해보아도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복리후생이 별 거 없는 회사라ㅠㅠ) 탕비실에서 과자 더 챙겨 먹기? 회식 때 고기 많이 먹기? 문구류 비싼 걸로 주문하기?


그러다 문득 회사 온라인 교육 시스템이 생각났다. 교육 점수는 받아야겠고, 교육은 듣기 싫어서 그나마 편한 걸로 골라 듣고 있는 회사 교육. 그 마저도 제대로 듣지 않고 있었다. 매달 월말이 되면 교육 시스템을 켜서 내버려 두고 중간중간 '다음' 버튼만 열심히 눌러준다.


주는 것도 별로 없는 회사(?), 그나마 제공하는 교육이라도 잘 이용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회사에서 학원을 보내준다고 생각하고, 강좌를 심사숙고해서 고른다. 그렇게 나의 온라인 교육 수강이 시작되었다.




나는 사실 온라인 교육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고등학생 때도 인강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집중도 안 되고 강의를 틀어놓으면 왜 이렇게 딴짓을 하고 싶은 건지.  나름 집중한다며 간식을 챙겨 오면 강의는 뒷전이고 간식만 집어먹느라 바쁘고, 몇 달 동안 안 읽고 책상 위에 방치해둔 책은 그 날 따라 유독 읽고 싶어 진다. 그런데 회사를 이용해보겠다 마음을 먹은 이상 그런 자세로 들을 수가 없었다.


신청한 회사 온라인 교육 강좌를 꼬박꼬박 듣기 시작했다. 아침에 30여분 정도 일찍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는다. 아, 너무 졸리다. 좋아하는 편의점 컵커피를 입에 물고 수업을 들어본다. 은근히 내용이 어렵다. 강좌 끝 부분에 있는 퀴즈도 풀어본다. 이렇게 일주일에 3번 정도씩 강좌를 빠짐없이 들었다.


처음엔 내가 왜 이걸 듣고 있나 싶었는데, 듣다보니 나름 강의를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 달만 꾹 참고 들어보자 했던 것이 두 달이 되고 1년이 됐다. 일과 육아에 치여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에 2~3번, 하루에 20~30분 정도는 내어줄 수 있었다. 어찌저찌 완강을 하고나면 얻어지는 뿌듯함은 덤이다.


사실 그냥 나 혼자만 듣고 만족하려고 했는데 나만 알기가 조금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레 동료들에게 회사 온라인 강의를 진짜 듣는다고 이야기했다. '뭐라고? 그걸 진짜 들어?' 열 명중 열 명이 그런 반응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 내 주변 사람만 그렇다고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강좌후기들을 보면 진짜 강좌를 듣고 남긴 후기들이 눈에 보인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나보다 더 한 사람들이 많다.


회사를 이용해먹겠다는 불건전한(?) 생각에서 시작된 나의 온라인 교육 수강은 회사 강좌뿐 아니라 K-MOOC, 대학 자체 무크 강의까지 확대되었다. 요즘에는 유튜브 강좌도 찾아보고 있다. 예전엔 '교과서로만 공부했어요'라고 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로 독학했어요'라고 하지 않던가.




'샐러던트(Saladent)'라는 말이 있다. '샐러리맨(Salaryman)'과 '스튜던트(Student)'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신조어로 공부하는 직장인이라는 의미이다.


몇 년 전 일이다. 한 학원의 설명회를 갔더니 공부하려는 직장인, 샐러던트들이 바글바글했다. 학원비는 생각보다도 더 비쌌고, 퇴근 후 학원을 오고 가는 시간도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나는 바로 마음을 접었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학원을 등록하는 직장인들도 꽤 있었다.


어쩌면 그런 학원에 비해서 온라인 교육은 강제성과 질적인 면에서 아쉬울 수 있다. 그래도 시간과 경제적인 부분에서 메리트가 있다. 게다가 코로나로 오프라인 교육이 제한적인 이 시기에, 온라인 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 '온라인 교육은 집중이 안 돼요'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짧게 끊어서 들어보시길 권한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직도 30분 이상 들으면 버거워서 끊어 듣는다. (밀리기도 자주 밀린다...) 그리고 모든 강의를 완벽히 이해하려 하지 않고, 뭔가 하나만 알아도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며 넘어간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나의 작은 공부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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