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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Sep 04. 2020

아이 둘 워킹맘, 대학원에 갑니다

준비된 자에게 공부의 때는 온다

내 공부 적금을 시작한 지도 5년이 지났다. 한 달에 10~20만 원씩 모으다 보니 거의 한 학기 등록금이 완성됐다. 그동안 남편의 대학원 과정도 끝났다. 하지만 막상 나는 대학원을 다니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아이는 한 명에서 두 명이 됐다. 아이가 둘이 되니 시간적 여유가 더 없었다. 둘째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회사가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많은 것이 바뀌게 되었고 그 변화를 준비하느라 바쁜 나날들이 계속됐다.


그 와중에도 문득 '그 지역에도 대학원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 가는 지역은 대학교 자체가 별로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찾다 보니 딱 한 군데가 내 눈에 들어왔다. 학부 때 내 전공과 복수전공을 합친 전공이 석사과정으로 개설되어 있었다. 게다가 재직자도 입학이 가능하다고.


낯선 지역으로 이사 가는 것 때문에 심란했는데 뭔가 작은 설렘이 생겼다. '나중에 애들도 좀 크고 생활이 안정되면 진학해도 되겠는데?' 공부 적금을 그냥 깨서 신나게 써버릴까 고민했던 마음은 고이고이 접어두기로 했다.


*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 와서 열심히 회사와 집만을 전전하던 어느 날, 친한 동료와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다. 이런저런 일상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동료가 갑자기 나에게 대학원 생각이 없냐고 묻는 거다. 다른 사람이라면 내 계획을 말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친한 동료라 내가 생각해 둔 곳을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그 동료가 반색을 표하며 회사 대학원 지원과정에 지원해보라고 했다.


우리 회사에서는 업무와 병행하는 선에서 대학원을 다니면 등록금 일부를 지원해준다. 단, 지원을 받고자 하는 직원들이 신청하면 심사를 해서 소수만 뽑는다. 지원자는 많고 선정되는 사람은 적으니 당연히 경쟁률이 치열하다. 그래서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지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고심했다. '내가? 지금? 대학원을? 복직한지도 얼마 안 됐고 갓 돌이 지난 둘째가 있는데?' 그래도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편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한치 망설임도 없이 얼른 지원해보라고 했다. 이것 때문에 못하고, 저것 때문에 못하고... 그렇게 미루다 보면 공부할 때는 없는 거라며. 그렇게 회사 지원 마감을 하루 앞두고 부리나케 지원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때부터 번갯불에 콩 볶듯이 대학원 입학을 준비했다. 일단 입학 서류에 토익 성적표가 필요한데 토익 점수가 없었다. 토익시험 일정을 찾아보니 바로 코 앞의 시험을 치면 대학원 서류 제출일까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점수가 안 나오면 어쩌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시험을 접수하고 토익시험을 준비했다.


게다가 대학원에 대해서 찾아보긴 했었지만 어렴풋이 가야지 하는 정도라서 대학원에 대한 세부 정보도 거의 없었다. 찾아보니 이미 입학 설명회는 끝난 뒤였다. 그제야 홈페이지를 뒤적거리고, 그곳에 없는 정보들은 입학처에 전화해서 물어보았다. '저...등록금은 얼마인가요? 휴학은 그 이상 하면 어떻게 되나요? 서류는 다 영어로 작성해서 제출하는 게 맞나요?'


어찌어찌 서류 전형을 통과하고 대학원 면접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회사 지원 대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세! 그런데 설마 회사 지원은 됐는데 막상 대학원 합격이 안 되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몇 개월 뒤, 나는 무사히 대학원 합격증을 받았다.


*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이사 간 지역에 내가 갈 만한 대학원이 있었고, 하필 회사 등록금 지원은 지원자가 적었고, 게다가 남편은 나에게 대학원에 가라며 적극 독려도 해 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준비에도 약간의 공을 돌리고 싶다. 등록금을 모으고, 대학원 정보를 찾아두고, 대학원에 가겠다는 꿈을 계속 품어왔다. 워킹맘이 무슨 대학원이냐며, 너무 욕심이고 무리라고 생각도 했다. 그래도 준비된 자에게는 때는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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