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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Aug 18. 2020

워킹맘, 가장 힘들 때가 언제냐 묻는다면

워킹맘으로서 들 때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아이가 아플 때를 1순위로 꼽을 것이다.


지금은 아이들이 조금 커서 전처럼 자주 아프진 않지만, 조그만 체구의 아이가 열이 펄펄 끓으면 엄마인 나의 마음도 펄펄 끓곤 했다. 특히 우리 아이들은 주말 밤에 열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갑자기 토를 하거나 열이 나서 축 늘어진 모습을 보면 발을 동동 굴리며 '제발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빨리 낫게 해 주세요'를 끊임없이 빌었다. 해열제를 먹어고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며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 회사 휴가를 내고 누워있는 아이를 바라보면 이제는 또 다른 걱정이 몰려온다. '이번에 아픈 건 언제까지 지속될까. 내일도 휴가를 써야 하나. 모레 회의는 내가 주관이라 빠지면 안 되는데...' 남은 휴가 일수를 헤아리며 남편에게 연락을 해 본다. 그런데 하필 남편도 출장이 잡혔다고 한다. '넌 아파도 꼭 이럴 때 아프니.' 그러다 문득 아이가 아픈데 이런 걱정을 하는 내 모습이 너무 나쁜 엄마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휴가를 다 소진해 버린 어느 겨울날, 이번엔 아이가 장염에 걸렸다. 하루 종일 먹지도 못하고 몸은 불덩이였다. 하는 수 없이 멀리 계신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도 일이 많고 몸이 안 좋으시지만, 딸의 부탁이니 미안해하지 말라며 우리 집으로 급히 오셨다.


그 날 오후,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그것도 영상통화로. 옆 자리에 있던 직원 하나가 내 휴대폰을 힐끗 보더니 "풉" 하고 웃었다. 그 직원의 눈이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한. 심. 해'.

그래, 그 직원에게는 걸핏하면 갑자기 휴가를 내고, 업무시간에도 영상통화를 하는 한심한 직원으로 보였겠지.


휴대폰을 들고 서둘러 빈 회의실로 들어갔다. 아이는 힘든데 엄마까지 옆에 없으니 하루 종일 먹지 않고 울기만 한 모양이었다. 우리 엄마는 아이가 엄마 얼굴을 보면 밥을 먹겠다는 말에 하는 수 없이 영상통화를 걸었다고 했다. "00아, 할머니 말씀 잘 듣고 밥 잘 먹어야지. 엄마가 끝나고 빨리 갈게."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덧붙이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바로 화장실에 들어가서 숨죽여 끅끅 울었다. 옆 자리 직원의 얼굴과, 휴대전화에 보이던 아이의 모습이 번갈아 떠오르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워킹맘으로서 가장 힘들 때는 아이가 아플 때와 더불어 내 자존감이 무너질 때다. 


사실 그 직원이 정말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몸은 지쳤고 마음은 약해진 상태였다.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시간이 지나면서 힘듦에 무뎌지고 죽을 것처럼 괴로웠던 시간들이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프면서 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인 나의 마음도 갈수록 단단해졌다.


'회사를 그만둘까 말까' 고민될 때면, 신의진 교수의 책인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것'을 자주 꺼내 읽었다. 그중 나에게 위로를 준 구절을 공유해본다.


"당신이 지금 어떤 모습이든, 가사와 직장 일에 지쳐 피폐한 모습이든, 직장에서 잘 나가는 동료에게 뒤처지는 모습이든 상관없이 당신은 아이의 엄마로서, 또 사회와의 연결의 끈을 놓지 않고 성장해 나가는 한 인간으로서 충분히 잘하고 있다.
그러니 초라해지지도, 자책하지도 말자. 아직 우리 사회가 그 가치를 제대로 보아주지 못했을 뿐이지, 당신은 아이의 성장과 자신의 성장을 동시에 이끌어 나가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아이의 엄마로도, 회사의 직원으로도 부족한 사람이다. 하지만 위대한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다. 남들은 몰라줘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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