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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Aug 24. 2020

남편의 육아휴직

"둘째를 낳게 되면 무조건 당신이 육아휴직을 하도록 해."


나는 둘째를 가질 때 남편에게 조건을 걸었다. 남편에게 육아휴직을 하라고. 나는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을 1년 냈다. 이제 남편이 약속을 지킬 차례였다. 나의 복직과 동시에 이번엔 남편이 육아휴직을 냈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고 내가 들은 말 중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남편이 육아 잘해?"

"육아가 낫대? 일하는 게 낫대?"가 아닌,


"남편이 밥 잘 차려줘?"였다. (진짜 많이 들었다. 거짓말 안 보태고 평균적으로 하루에 한 번 이상 꼭 들었다.)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을 참 중요시하는 것 같다. 밥을 잘해준다는 게 정말 엄청난 건가 보다. '밥 잘 챙겨준다', '밥 맛있게 해 준다'라고 대답하면 주부 9단인 분들도 정말이냐고 거듭 물어보시고, '나도 집에서 애나 보며 놀고 싶다'라고 비꼬며 말하는 분들도(... 하아) 그건 정말 못하겠다고 하신다.


다들 남편이 대단하다고 칭찬을 하는데 남편 휴직 전까진 나도 했던 거라 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 하면 대단한 거고, 내가 하면 당연한 건가? 하지만 집에 와서 맛있는 밥상을 보면 정말 기분이 좋아서 억울함이 싹 가셨다. (나도 한국인인가 보다, 밥은 참 중요하다.)

                                                                                                                                                                                     

첫째 때는 1년 육아휴직 후 바로 어린이집을 보냈다. 우리는 양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도우미도 구해보려 했으나 잘 안 되어서 어린이집에만 의존했다. (그나마 좋은 어린이집 선생님들을 만나서 많이 의지했고 버틸 수 있었지만.)


사실 그때도 남편 회사에는 남자 육아휴직 제도가 있었다. 다만 거의 쓰는 사람이 없어서 고려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슬쩍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자기가 휴직을 하고 내가 복직을 하면 '나를 일에 미치고 가정을 등한시하는 못된 엄마'로 볼 거라고 했다.(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기가 막히고 황당한 논리인데 내가 수긍한 걸 보면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둘째 때는 남편이 휴직을 이어서 내니, 아이들도 아빠와 있어서 좋아하고 나도 안심이 됐다. 아이들이 아파도 '누가 휴가를 내지? 회사에는 어떻게 말하지?' 고민하며 눈치를 안 봐도 돼서 좋았다. 게다가 육아휴직급여는 1년만 유급이기 때문에 교대로 내면 휴직급여가 각각 나와 경제적으로도 큰 보탬이 됐다.


엄마 껌딱지였던 둘째는 남편의 육아휴직 동안 아빠 껌딱지로 변했다. 처음엔 아기 기저귀도 주문하지 못했던 남편은 아이들 빨래, 첫째 유치원 준비물 챙기기, 둘째 이유식 만들기도 기가 막히게 해냈다.


남자들은 원래 살림과 육아를 못한다고들 하던데 아니었다. 사실 엄마들도 처음부터 집안일과 육아를 능숙하게 하는 사람은 없다. 나도 우당탕탕, 울고 웃으며 배웠다. 남편도 나와 같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살림과 육아를 체득해갔다.

  

그렇게 1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남편은 회사에 복귀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아빠의 육아휴직 추억은 계속되는 모양이다. 첫째는 지금도 하원 하면서 '아, 집에 아빠가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네~'라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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