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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Sep 17. 2020

마음이 담겨있는 책


책을 좋아한다. 그중 더 마음이 가는 책들이 있다. 좋아하는 이유는 대부분 내용이다. 글감이 좋아서, 문체가 좋아서, 글의 느낌이 좋아서. 그런데 내용이 아닌 이유로도 좋아하는 책이 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동네에 있는 조그마한 보습학원에 다녔다. 한 반에 6~8여 명 정도가 다니는 작은 학원이었다. 같은 반 친한 친구의 소개로 그 학원에 등록했다. 엄마는 뭔가 유명한 학원이 아니라며 탐탁지 않아했지만 나는 이 학원이 마음에 들었다. 수업의 질은 차치하고 친구들과 다닐 수 있다는 것과 가끔 선생님들이 사주는 간식이 좋았다.


그곳엔 한 젊은 여자 선생님이 계셨다. 가르치시는 과목은 영어였던 것 같다. 사춘기인 아이들은 수업도 잘 듣지 않고 유독 이 선생님께 짓궂게 굴었다. '수업 듣기 싫어요', '다른 답도 맞지 않아요?', '시험 끝나면 피자 쏘신다면서요.'  나도 그 선생님께 호의적이었던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나름 수업은 들었으며, 숙제도 꼬박꼬박 해갔다.


내가 학원을 그만둘 무렵, 선생님도 학원을 그만두신다고 했다. 그리고 날 부르시더니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셨다. 안도현의 <연어>. 그 책이 바로 위에서 말한 '내용이 아닌 다른 이유로 좋아하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은 유명하고 내용도 의미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떠올리면 책의 내용보다도 그 선생님이 먼저 떠오른다. 책 표지를 넘기면 그 안에는 나에게 보내는 선생님의 편지가 적혀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00이이게


원하는 것을 향해 뛰어오르려는 사람에게 가끔 선물했던 책이란다.

먼저는 소원을 마음에 품고 긍정적인 생각이 필요하다는 걸 선생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확인했거든.


헤어진다라는 섭섭함이 있고, 또다시는 못 볼 사람이라는 게 못내 아쉽지만, 그래도 알고 지낸 몇 개월로 인하여 그 사람의 앞길을 축복하고 잘 되길 바라며 기도할 수 있어서 감사하단다.


어느 곳에 가서나 항상 성실하게 잘할 00이라는 거 믿는단다. 지난번 말했던 것처럼, 이제는 실수도 줄여나가고 은근히 덤벙대는 것도 조절하고, 무엇보다 네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도록 해. 좋은 것을 바라고,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도 항상 겸비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서 언젠가는 볼 수 있도록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하자꾸나.


선생님 편지의 일부




이 책을 받고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큰 마음 없이, 기대 없이 그 선생님의 수업을 듣곤 했는데, 그 선생님은 왠지 나에게 지식뿐 아니라 마음을 쏟고 계셨던 것 같아서. 그러신 줄 알았으면 더 열심히 수업을 들었을 걸 그랬네, 라는 생각을 했다.


요즘도 가끔씩 이 책을 꺼내 들 때면 책의 내용을 다 읽지는 않아도 선생님의 편지는 매번 읽어본다. 선생님의 편지를 통해서 나에게 보내는 선생님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어린 시절 나는 원하는 것을 향해 뛰어오르려는 학생이었을까? 아직도 실수도 자주 하고 은근히, 아니 대놓고 덤벙거리는 것도 잘하는데. 그래도 선생님의 믿음처럼 성실하게 살려고, 믿음을 겸비하고 살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선생님 말대로 정말 언젠가 다시 마주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떤 모습이실까? 내가 아이 둘 엄마로 허둥지둥 살고 있는 걸 보시면 왠지 깜짝 놀라실 것 같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나도 선생님께 전하고 싶은 말을, 그런 내용이 담긴 책에 적어서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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