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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Sep 28. 2020

'아님 말고' 정신

나는 질문하거나 부탁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한다. 이유는 돌아오는 반응이 두려워서고, 그 반응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가 버거워서다.

일단 질문에 있어서는 상대방이 나의 모름을 알까 봐 두렵다. 아니, 질문이란 게 모름지기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게 맞는데 무슨 말인지? 물론 나도 막연히 모르는 것을 질문할 때가 있긴 하다. 그럴 때 친절한 답변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간혹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니?', '너 전혀 이해를 못한 거 같은데' 식 반응이 돌아오면 무안하고 부끄럽다. '아, 괜히 말했다. 그냥 잠자코 있을 걸...'

부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웬만하면 부탁을 안 하는 편인데, 내가 부탁을 한다면 나름 여러 번 상황과 상대방을 생각한 경우다. 그럴 때 거절의 말이 돌아오면 애써 쿨한 척 하지만 내 속은 전혀 쿨하지 않다. 이 때도 '괜히 부탁했어, 힘들더라도 그냥 내가 할 걸. 내 마음만 상하고' 하면서 끙끙거린다.

위와 같은 이유들로 진정 궁금할 때 물어보지 못했고, 부탁하면 금방 끝낼 일을 스스로 갑절의 시간을 걸려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저런 이유로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불쑥 올라오기 시작한 생각. '무안하면 어떻고, 거절당하면 어때? 질문하고 부탁하는 게 돈 드는 일도 아니고. 일단 해보자. 안되면 말고.'

그렇게 전과 달리 종종 아님 말고 정신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무난한 질문, 답변자가 대답하기 용이한 간단한 질문을 했다면, 요즘엔 가급적 내가 궁금한 점을 물어본다. 상대방이 무슨 말이냐 반응을 보여도 꿋꿋이 부연설명을 해서 질문을 이어간다.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다 명확하거나 호의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는 답변들이 정말 많다. 가끔은 나도 내가 무슨 질문을 하는 건가 싶은 질문을 하는데, 그래도 반가워하며 성심성의껏 답변해주는 분들이 계신다. 물론 질문이 늘어난 만큼 무안한 상황도 늘었는데,  나를 무안하게 만드는 사람이 잘못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내가 소심한 탓도 있다. 그건 이런 상황에 계속 노출되고 단련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부탁의 경우엔 빈도가 많진 않지만 질문하는 것보다는 쉽게 다가왔다. 부탁했는데 거절당해서 내가 하거나, 그냥 내가 하거나 뭐든 최악의 상황은 내가 하는 것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대신 무례하지 않게, 까여도 된다는 생각으로 요청했다. 전혀 기대 없이 '일단 말이라도 꺼내보자' 했던 제안에 수락이 오면 정말 뿌듯하다.(물론 그런 경우는 별로 없지만...)

이 '아님 말고' 정신이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도움이 되고 있고, 앞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제라도 뭐든 좀 과감하게 해봐야지. 세상엔 해서 하는 후회 보다도, 안 해서 하는 후회가 더 크다는 말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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