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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Oct 09. 2020

대학원 첫 학기의 기록

대학원 합격소식을 듣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운전연습이었다. 나는 당시 고작 편도 5분 거리인 집-회사 코스만 겨우 운전하는 왕초보였다.(참고로 1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왕초보다.) 내가 다니는 대학원은 대중교통이 열악해서 운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었다.


입학을 약 한 달 남겨두고 남편과 아이들을 태우고 주말마다 집에서 대학원까지 운전연습을 했다. 짧은 거리도 있었지만 로터리가 너무 무서워서 우회하는 코스를 택했다. 막히지 않으면 편도 20여분, 막히면 50여분 정도가 걸렸다. 오래전 라섹수술을 받았지만, 시력도 나빠진 데다 빛번짐도 심해서 안경도 새로 맞추었다.


운전만이 고비는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한지도 벌써 10여 년이 지났. 공부를 하고 싶다고 입학했건만, 내 머리는 마음을 따라가지 못했다.  학부 때 배웠던 전공은 과목명조차 가물가물하고, 강의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것도 어색했다. 분명 강의를 듣고 있는데 강의 내용은 내 주변을 맴돌기만 하고 나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



수업은 평일 하루와 토요일에 몰아 들었다. 덕분에 그 날은 전적으로 남편이 아이들을 전담했다. 수업이 없는 날엔 퇴근하고 남편과 같이 아이들을 챙긴 뒤 아이들이 잠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잠든 아이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면 아이들이 깨지 않게 조심스레 거실로 나와 노트북을 붙들고 과제를 했다. 내 몸도 지쳤지만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대학원에는 직장인들, 아이의 아빠들은 많았지만 아이 엄마들은 거의 없었다. 내가 아이 둘 엄마인 걸 알게 된 학우분들은 '아이들은 누가 봐요?' 묻곤 했다.


"남편이요." 

"와, 남편분 대단하시네요. 아이들은 엄마 안 찾아요?"


사실 전에 남편이 대학원을 다녔을 땐 나 포함 모두가 그러려니 했건만 내가 다닐 땐 왜 이리 나쁜 엄마가 된 기분인 건지.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억울함이 함께 내 속에서 한 없이 뒤엉켰다.


그런 내 상태와는 전혀 관계없이 교수님들은 가열차게 진도를 나가시고 과제를 잔뜩 내주셨다. 개인과제뿐 아니라 팀 프로젝트까지. 첫 학기에 4개의 수업을 들었는데, 그중 3과목이 팀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래도 팀플을 통해 몇몇 좋은 학우분들을 만나 아직까지 교류하며 잘 지내고 있다.


*



그렇게 첫 학기는 정신없이 지나갔다. 뭘 배운 것 같긴 한데, 뭘 배웠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랄까. 첫 학기에 얻은 성과는 '내가 모르는 게 참 많구나'를 알게 된 것이다. 모자란 건 방학에 좀 더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방학은 방학답게 정말 책 한 번 펴보지 않고 지나갔다. 과연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배움은 성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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