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찹쌀떡 Oct 22. 2020

공부하는 엄마

엄마라면 모름지기 아이의 공부에 관심이 많아야 하건만, 솔직히 나는 내 공부에 관심이 더 많다.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서 일 수도 있고, 지금은 이래도 나중에 아이들 학습에 불타오를 수도 있다.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는 내 공부를 훨씬 더 생각하고 고민한다.


나는 문제집을 풀고, 책을 읽고, 학습모임에 참여하고, 온라인 강의를 듣고,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물론 다 완벽하게, 오랜 시간 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찔끔찔끔, 깨작깨작한다. 효율성이 매~우 떨어진다. 그래도 하긴 한다.


간혹 스스로의 멍청함에 탄식하기도 한다. 읽어도 도통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돌아서면 까먹고, 또 까먹는다. 학생 때라면 금방 외웠을 것 같은데. 그나마 전과 비슷한 건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다. 시험기간을 앞두고 놀면 마음이 불편한 것처럼, 며칠 동안 공부를 안 하면 조금 과장해서 죄를 짓는 기분마저 든다.


*


예전의 나의 공부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학창 시절엔 오로지 성적만을 위한 공부를 했다. 엄마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선생님께 칭찬받기 위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공부했다. 시험을 앞두고 벼락 치기를 할 때면 외워야 할 게 너무 많아서 화가 났다. 나름 배우는 즐거움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성적표에 찍힌 점수와 등수가 공부의 동기이자 목표였다.


그러던 내가 지금처럼 공부하게 된 시작은 아이를 낳고 난 이후였던 것 같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나름 정성을 쏟아가며 아이를 키웠다. 그러면서 동시에 점점 나를 잃어갔다. 처음엔 부모가 되면 당연한 거라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억울함이 올라왔다. 뭔가 내 정신을 분산시킬 곳이 필요했다.


시간도 별로 안 들고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먹고 자는 것도 좋지만 뭔가 생산적인 일이면 더 좋을 텐데. 그때 생각난 게 공부였다. 엄청난 양과 목적이 있는 공부는 아니었다. 그렇게 하기엔 시간과 체력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냥 책 몇 장 읽고, 문제집 한두 장 풀고, 공부 관련 팟 캐스트 잠깐 듣고. 그게 다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스멀스멀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게 됐다.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그래서 배우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다. 예전의 나는 공부할 게 너무 많아 짜증이 났었지만,  지금의 나는 공부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이런 마음을 품게 된 큰 이유 중 하나는 시험의 유무이기도 하다. 물론 가끔 시험에 응시하긴 하지만 대부분 전처럼 기회가 한 번뿐인 것도, 반드시 고득점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일정을 무리하고 촉박하게 잡지도 않고, 무작정 다 외우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공부를 대하는 마음이 좀 편해졌다.


*


나는 할 수 있는 만큼만, 아주 천천히 공부하고 있다. 누가 보면 그게 공부냐? 고 할 정도로 책 한쪽만 겨우 보는 날도 많다. 공부하는 분야도 들쑥날쑥하고 알고 싶지 않거나 모르는 내용은 그냥 과감하게 넘기기도 한다.


간혹 공부법 책들을 보면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공부는 일정 기간 동안 집중해서 한 분야의 내용을 깊게 다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관점에서 내가 공부하는 방식은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효과도 미미할 것이다. 사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아마도 당분간은 이런 방식으로 공부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공부의 필요성과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 방식이니까.


브런치에 공부하는 엄마를 주제로 글을 쓰게 된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절대 내가 공부를 많이 해서, 잘해서 쓰는 게 아니다. 사실 내 부족함과 모자람을 드러내는 건 좀 부끄럽다. 종종 직장인 공부, 엄마 공부, 성인 공부 등을 찾아보며 읽다가, 나처럼 완전하지 않아도 이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공유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용기 내어 써보게 됐다.


몇몇 사람들은 내 공부의 무쓸모를 에둘러 말한다. '그냥 공부? 전문자격증 공부가 아니고?',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 '그러면 애들이 놀자고 안 해?' 물론 전문가가 되는 것도, 먹고 자고 놀며 뒹굴뒹굴하는 것도, 아이들과 까르르 웃으며 보내는 시간들도 다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냥 지금의 공부 자체가 의미 있다. 그렇기에 오늘도 아이들이 잠든 시간, 약간의 의무감과 설렘을 품고 책상에 앉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학원 첫 학기의 기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