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여름, 사춘기]
똘똘하고 착하기만 했던 큰 딸이 최근 들어 내 속을 썩여도 너무 썩인다. 내가 무슨 말만 할라치면 화낼 준비가 되어있다. 얼굴엔 짜증이 한가득이다.
오늘 아침엔 늦었는데 아침밥을 한 술 뜨고 가라 했더니 짜증을 잔뜩 내며 나가버렸다. 나는 아침부터 첫째가 좋아하는 가지볶음이랑 오징어채랑 바로 만들어서 먹게 하려고 한 건데... 본인이 계속 깨워도 못 일어나서 늦었는데 괜히 나한테 지각의 화살이 돌아왔다.
방안에 들어가니 책상에 문제집들이 잔뜩 널려있다. 사달라고 해놓고 하나도 풀어놓지 않았다. 뭐라고 하고 싶은데, 뭐라고 했다가는 또 싸울 것 같아서 열을 삭힌다.
지난 주말엔 아이와 큰소리로 싸웠다. 첫째가 소파에 누워있길래 그냥 별 뜻 없이 웃으며 '요즘 완전 소파랑 한 몸이네?' 한 마디 건넨 것뿐인데 갑자기 벌컥 화를 냈다. '엄마는 내가 누워있는 꼴을 못 보지? 엄마는 그렇게 공부가 최고야? 그렇게 비꼬면서 말하면 엄마 속이 편해??'
그러더니 동생들한테는 뭐라 안 하면서 자기에겐 엄격하다느니, 다른 친구들 중에는 엄마처럼 엄격한 사람은 없다느니, 엄마는 집에서 계속 쉬고 있으면서...라고 다다다다 쏟아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던 나도 화가 폭발해서 결국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사춘기가 되면 힘들다고 하던데, 이런 시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최근 몸이 너무 아픈데, 첫째를 보고 있으면 마음까지도 너무 아프다.
특히 '엄마는 집에서 쉬고 있으면서...'라는 말이 맴돈다. 나도 한때는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번듯하게 직장생활을 했었는데.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으면서 결국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그래도 가족들을 보며 행복했었는데... 내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나는 뭐지? 나도 우리 애들처럼 꿈을 꿀 때가 있었는데...
[고1 3월, 입학]
오늘은 첫째가 하원을 하고 펑펑 울면서 집에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당장 자퇴를 하겠다고 난리였다.
고등학교 평준화가 되어 뺑뺑이 배정을 했는데, 첫째만 친구들과 동떨어져 먼 거리의 학교에 배정이 됐다. 그런데 오늘 야자가 끝나고 원래 타던 버스 막차를 놓쳤단다. 게다가 핸드폰 배터리도 나가버리고. 가뜩이나 아직 친구도 없고 낯선 동네, 낯선 학교 분위기에 힘들어했는데 오늘 터져버린 것이다.
아이를 겨우 달래 재우고 남편과 침대에 누웠다. 남편이 말했다.
"당신, 운전면허 따."
세상에서 겁이 제일 많고 운전 조수석에 타는 것도 힘든 나에게 운전이라니? 운전이라고? 난 못해. 정말 못해.
"그래도 00이 저렇게 둘 거야? 당신 운전하면 오늘 같은 날 데리러 갈 수 있잖아."
그래... 못할 게 어디 있나. 내일 당장 면허학원을 등록하기로 했다.
[28세 봄, 출산]
00 이가 아기를 출산했다. 본인이 낳은 아이가 신기한지 신생아 카트 속 아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00 이는 결국 응급으로 수술해서 아기를 낳았다. 그래도 큰 문제없이 출산해서 다행이다. 00 이를 보니 아기를 낳느라 힘들었는지 얼굴도 몸도 퉁퉁 부었다.
방금 남편도 연락이 왔다. 00이 안부부터 묻는다. 00 이도, 아기도 건강하다 하니 안도의 한숨이 전해진다. 나와 남편이 할머니, 할아버지라니. 그리고 우리 아이가 엄마라니. 기분이 참... 형언하기 어렵다.
내가 걸어온 길을 우리 아이도 걷게 될까. 힘들겠지만... 더 행복한 일들이 많겠지. 내 딸은 나보다 더 현명하게, 행복하게, 당차게 그 길을 걸어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