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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Dec 02. 2020

방관과 꼰대 사이에서

좋은 선배의 역할이란

나는 막내 역할을 오래 했다. ('오래'란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회사에서는 나름 긴 편이었다.) 그러다 부서 이동을 하고 같은 팀 내에서 처음 후배들이 생겼다. 그 후배들은 그 부서의 업무를 오래 하기도 했거니와 똘똘한 편이어서 내가 딱히 해줄 부분이 없었다. 내가 바쁠 땐 후배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고, 후배들이 힘들 땐 내가 먼저 도와주는 그런 이상적인 협력 관계에 있었다.


그런 후배들이 부서를 떠나고 나에겐 고비가 왔다. 새로 만난 몇몇 후배들은 기존의 후배들과는 달랐다. 업무도 서툴렀고 큰 노력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중엔 나보다 나이가 많은 후배도 있었다. 그런 후배들을 상대로 몇몇 선배들은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 했다. 후배들은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꼰대'라고 투덜거렸다.


후배들은 그 선배들보다 나를 편하게 대했던 것 같다. 그래서 '00님(나)은 별말 없으셨는데 그분은 꼭 그러신다니까요?' 하며 나에게 '꼰대'선배와 있었던 일화들을 편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별말 안 했던 이유는 누군가와 부딪히기 싫어서였고 '나도 모자란 마당에 누가 누굴 가르쳐'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람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 후배들과 (겉으로) 무난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한차례 조직의 변화가 생기면서 또 다른 고비를 맞았다. 팀원이 적어졌고, 내 위치는 높아졌으며, 이제는 정말 업무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후배들만이 남았다. '어쩔 수 없지, 그냥 내가 더 하는 수밖에.' 나는 체념하고 묵묵히 일을 떠맡았다. 부장님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부장님은 말했다. "쟤네들은 안될 것 같아. 사람은 고쳐 쓸 수 없거든." 그래, 솔직히 나도 이 말에 동의해왔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발끈해서 "완벽하게는 안 되더라도... 조금이라도 변하도록 도와주는 게 상사(선배)의 역할 아닐까요?"라고 소심한 항의를 했다.


뻔뻔하게도 선배로서의 부장님을 지적해놓고 나는 전혀 그런 선배의 역할을 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내 모습이 그렇게 좋은 선배의 모습이 아닌 걸 알면서도, 그냥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길 바라 왔던 것 같다.


문득 내가 거쳤던 선배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나와 같이 터치 없이 친절했던 선배도 있었다. 당시에는 분명 좋은 선배라고 생각했는데, 그 선배를 통해 크게 배운 점은 없었다. 반면 나의 문제점을 지적한 선배들의 충고 중에는 두고두고 도움이 되는 조언도 많았다. 물론 충고라는 게 양날의 검이어서 어떤 건 조언이지만 어떤 건 비수로 남아 아직도 날 괴롭히고 있지만.


그래서 나도 좀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업무를 조정하고 후배들의 업무를 봐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후배들, 똘똘이 후배들과는 달라서 첨삭을 해줘도 반영이 잘되지 않는다. 10분 설명하면 될 일을 한 시간을 설명해야지만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해요'라는 답답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제야 부장님의 마음이 백번 이해가 되고, 아 그냥 포기할까 싶기도 했다. 사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해도 후배들에게는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잔소리하는 선배로 여겨지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었다. 그런 선배들에게 고마움을 느낀 건 한참이 지나서였으니까. 물론 이렇게 시간과 마음을 쏟아도 후배들이 나중에라도 알아준다는 보장도 없다. 애써서 감정만 상할 바에야 그냥 전처럼 잠자코 있는 게 낫지 않으려나.


그런데 이런 후배들일수록 주변 사람들이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좀 슬플 것 같다. 타고난 재능이 있거나 스스로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임을 잘 안다. 하지만 그 요령을 터득하는 과정조차 서투른 사람들이 있다. 60점을 100점은 아니더라도 80점으로 만드는 건 재능이 아니라 조력자의 역할이 있다면 가능한 부분이 아닐까.


그래서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 내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는 오지랖의 역할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쩌면 지금의 나도 배우고 있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언제, 어디서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어느 부분에서 힘을 줘서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좀 더 좋은 선배로서의 요령이 생긴다면 쓸데없는 잔소리가 아니라 적재적소의 현명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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