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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Jan 21. 2021

별 볼일 있던 날들의 기억

대학생 때 동아리 활동을 했다. 3년 동안 꾸준히 한 동아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물어보면 대답을 다소 주저하게 된다. 하는 동안에도, 지금도 잘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내가 참여한 동아리는 천체 관측 동아리였다. 나는 천문학에 1도 관심이 없었다. 그냥 친구 따라 동아리 설명회를 갔던 것인데 느낌이 좋아 나도 모르게 가입 신청서에 일단 이름을 써넣었다. 하지만 날 데려간 친구는 다른 동아리에 들어갔고, 나는 동아리 사람들이 좋아서 눌러앉게 되어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가끔 학교 수업보다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았다. 동아리에서는 매주 학술 세미나를 하고, 외부인들을 대상으로 관측회를 열었다. 나는 별에 대한 지식이 없었으므로 남들보다 더 공부해야 했다. 하지만 노력하는 자가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천문학에 대해 근본적인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


특히 가장 곤욕스러웠던 일은 별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별은 추운 겨울일수록, 늦은 밤일수록, 도시 공해가 없는 산골짜기 일수록 잘 보인다. 한겨울이 되면 관측 장비를 매고 동아리 사람들과 강원도 철원 등지로 떠났다. 하늘을 보고 사진에 담을 별자리를 탐색한 뒤, 조리개와 노출 시간을 정한다. 별들이 화각에 들어오도록 위치를 탐색한 뒤에 삼각대 위의 카메라를 세팅한다. 일주 사진을 찍을 거라면 별이 움직이는 이동 방향도 고려해야 한다.     


나는 첫 단계부터가 난관이었다. 선배들이 밤하늘을 가리키며 '저기 000 자리 보이지?'라고 하는데, 내 눈엔 그냥 하얗게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여기저기 뿌려져 있을 뿐이었다. 요즘이야 앱으로 별자리 위치를 확인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중심이 되는 별을 토대로 별자리를 찾아야 했다. 책에서 만났던 별들도 실제 밤하늘에서 마주하면 어찌나 낯설던지. 별들 앞에서는 매번 까막눈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와 달리 동기들은 별에 대해서 해박했고, 관심도 많았다. 그렇지만 불행 중 다행이었던 점은 그 동기들이 의외로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별이 쏟아지는 날이면 선배들은 열심히 사진을 찍으라며 독촉했지만, 나와 동기들은 대충 카메라를 세팅한 뒤 바닥에 철퍼덕 누웠다. 인위적인 빛은 별 관측에 방해가 되었으므로 누구도 휴대폰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요하고 캄캄한 밤 속에 누워있으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카메라로 보는 것보다 이렇게 누워서 보는 별이 훨씬 이쁘지 않니?"     


다들 큰 반응은 없었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나 또한 별자리는 못 찾아도 그렇게 보는 별들이 참 예쁘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이름이 있어도 이름을 몰라 부를 수 없는 별들이 밉다가도, 그렇게 마주하는 별들이 너무 예뻐서 동아리 활동을 계속하지 않았나  싶다.


*


나에게 또 하나의 고비는 사진을 찍고 난 다음이었다. 당시엔 수동 필카로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나중에 인화한 뒤에야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몇 분간 노출시킨 별의 일주 사진은 사진에서 벗어나 있거나, 여러 별자리가 겹쳐서 엉망이었다. 내 사진은 작품으로 꼽힌 적이 거의 없었고 나가리 중에서도 A급이 아닌 B, C급에 속했다.


보통은 자신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던 선배들도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가끔은 카메라 세팅을 봐주곤 했다. 선배들은 항상 강조했다. 열심히 찍어라, 남는 건 사진뿐이다. 선배들의 말과 달리 나에겐 사진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추억은 남아있다. 별 사진을 찍던 날 무지하게 추워서 양말을 세 겹씩 신고 털부츠에 발을 낑겨 넣었던 일, 중간에 라면이라도 끓여 먹자고 챙겨 온 생수통을 열었더니 물이 꽁꽁 얼어 있었던 일, 이번엔 내가 봐도 각도가 진짜 괜찮다며 찍었는데 셔터를 안 눌렀던 일 등등….     


다만 그때의 시간을 사진이 아니라 글로 기록해두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랬다면 조각조각 남겨진 추억들을 연속적으로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완벽한 재현은 불가능하더라도 그때의 상황과 기분을 나중에라도 공유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밤하늘은 여전히 곁에 있으니 괜찮다고 위로해본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 무심결에 밤하늘을 바라보는 날이면 하늘 속에 숨어있던 그때의 추억들이 스멀스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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