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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Jan 12. 2021

그것만 먹으면 지겹지 않아?

꽂힌 음식은 주구장창 먹는 나

“저... 아이스 석류차 주세요.”


머뭇거리다가 음료를 주문했다. 점원 분이 주문을 듣더니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하고 웃으신다. 벌써 두 달째 회사 로비 카페에서 주 5일 중 4일은 아이스 석류차를 주문하고 있다. 아, 아메리카노나 카페라떼였다면 그렇게 튀지 않았을 텐데. 그나마 석류차를 주문하는 사람들은 따뜻한 석류차를 주문할 테지만 나는 이 추운 날씨에도 꿋꿋하게 ‘아이스 석류차’를 마신다.


나에겐 뭔가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하는 분야들이 있다. 음식도 그중 하나다. 질릴 때까지 주구장창 먹는다. 사실 꽂힌 메뉴로만 삼시 세끼를 다 먹을 수도 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가족, 동료 등을 고려해서 자제한다.


엄마 말에 따르면 어릴 땐 그렇게 떡국에 환장했다고 한다. 유치원 다녀와서 엄마가 뭐 먹고 싶니? 물어보면 들으나 마나 대답은 항상 ‘떡국'. 중학교 때 도시락 반찬으로는 매콤 달콤하게 만든 진미채 볶음을 너무 좋아했다. 3년 내내 매일 점심 도시락으로도 모자라서 집에서 저녁 반찬으로도 먹었다.


고등학생 때는 떡볶이에 빠져 있었다. 사실 떡볶이는 어릴 적부터 좋아했는데, 이때는 즉석떡볶이에 꽂혀있던 시기였다. 학교 앞에는 즉석떡볶이를 파는 분식점 2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두 곳의 큰 차이는 떡이었다. 한 곳은 밀가루 떡볶이 떡이었고, 한 곳은 쌀 가래떡을 썰어 주셨다. 두 곳을 번갈아 다녔다. 당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집에서 차를 타고도 30분 거리였는데, 주말에도 즉석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자율학습을 핑계로 학교에 갈 정도였다.


대학생 때는 학교에서 팔던 참 유부(참치김밥+유부초밥)를 거의 매일 먹었다. 하루 한 끼가 아니라 점심, 저녁으로 먹은 적도 많다. 회사에 입사해서는 덴마크 민트라떼 우유에 푹 빠졌다. 편의점에 많은 수량이 들어오지 않아서 편의점에 그 우유가 보이면 보이는 대로 다 샀다. 그리고 지금은 잠시 아이스 석류차가 그 자리를 잇게 된 것이다.

한참 꽂혀있던 참유부와 덴마크 민트라떼


대부분 나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정말 좋아하는구나!’, ‘이젠 좀 지겹지 않니?’하고 놀라지만 가족들은 ‘이번엔 그거냐’ 하는 반응이다. 사실 위에 나열한 음식들은 아직도 좋아하는 음식들이다. 물론 푹 빠져 있을 당시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도 한 달 동안 매일 그 음식만 먹으라면 괜찮다고 답할 수 있다.


문득 생각해봤다. 왜 그렇게 그 음식들을 좋아할까? 왜 그 음식들에 빠졌을까? 당연히 나에게 맛있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이 음식들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대부분 뭔가 기대하지 않고 먹었는데 ‘오, 뭐야? 맛있잖아!’ 하는 첫인상을 주었다는 점, 그리고 뭔가 이 음식들을 떠올리면 좋은 생각이 난다는 점이다. 아마 그래서 그 음식들의 인상과 추억이 계속 잔상에 남아서 맛이 배가 되는 것 같고,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우울할 때, 피곤할 때 위로가 되고, 기쁘고 신날 때는 같이 축하해주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이 음식들에 꽂히게 된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요즘엔 이런 증상(?)이 유전인가 싶기도 하다. 첫째가 나의 이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돌 지나서 처음 먹은 멸치볶음은 6년째 최애 반찬이고, 작년부터는 뭐 먹고 싶냐고 물으면 항상 ‘오리고기’를 답한다. 문득 첫째는 무슨 연유로 이 반찬들에 빠지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부디 ‘엄마의 요리 솜씨가 별로인데 그나마 먹을 만한 게 이 반찬’ 이런 이유는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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