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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Feb 02. 2021

불평은 해결책이 아니다


지난 주 남편이랑 다툼이 있었다. 시작은 그랬다. 저녁을 먹다가 내가 회사에서 힘든 일을 이야기했다. 잠자코 듣던 남편은 그와 관련된 일과 사람을 끊으라고 했다. 너무 막무가내의 방안이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했더니, 남편은 '당신은 왜 이야기를 해줘도 듣지를 않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우울했던 나의 마음이 욱! 하면서 화로 바뀌었다.     


"아니, 무 자르듯 뚝 자를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했지. 내가 해결책을 달래? 힘들다 하면 그냥 힘들겠구나, 하고 위로를 해주면 되잖아. 내가 이런 이야길 어디 가서 더 하겠어? 당신이니까 하는 거지."     


그렇게 즐거웠던 저녁 시간에 정적이 흘렀다. 다음 날 저녁, 다시 식탁에 마주 앉아 어영부영 화해했다. 서로의 잘잘못은 따지지 않고 조용히 묻어두었다. 솔직히 말해서 다투고 화해하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남편이 100% 잘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이틀 뒤, 회사의 동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 동료는 평소 불평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그 날 이야기 나누는 동안에는 내 불평의 비중이 더 컸던 것이다. 나를 둘러싼 것들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문제는 내 안에도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두려워졌다.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계속 불평을 해왔던 게 아닐까? 이 감정을 가장 편한 사람이란 이유로 남편에게 자꾸 내보였던 게 아닐까? 그러다 보니 잠자코 들어주던 남편도 짜증이 났나?     


그렇지만 뭘 고쳐야 할지 막막했다. 사실 나한테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외면하고 싶었다. '힘들고 짜증이 나는데 아무 말 안 하고 꾹 참는 게 정답은 아니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순간마저도 불평하고 있었다. 도움이 될 만한 게 있나 싶어 불평에 관련된 이런저런 책을 찾아보았다. 그중 제목이 확 들어온 책이 한 권 있어 바로 주문 버튼을 눌렀다.      


바로 그 책, '나는 불평을 그만두기로 했다'라는 책에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p44) 우리는 온종일 똑같은 문제로 투덜거리는 버릇이 있다. 누구나 오랫동안 반복해온 불평이 있고, 이런 불평은 아주 사소한 일로도 튀어나온다. 나는 이것을 ‘반사적 불평’이라고 부른다. 반사적 불평은 심각한 일이 아니어도 저절로 나온다. 조금이라도 의지가 약해지면 이때다 하고 중얼거리게 된다. 또한 주목이나 동정을 받고 싶을 때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문제 해결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습관적으로 하는 불평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피곤해', 다른 하나는 '짜증 난다'. 불평에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하면, 이런 습관적이고 사소한 불평은 가장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그만두기는 쉽지 않을까? 그래서 딱 하루만이라도 불평을 하지 말아보기로 했다. 뭐, 하루쯤이야. 대신 속으로 불평하는 건 예외로 치기로 했다. 나는 관대하니까!     


하지만 이런 낙관성과 관대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결심은 반나절 만에 무너졌다. 혼자 입을 꾹 다물고 일할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점심에 동료와 커피를 홀짝이며 나도 모르게 ‘피곤해’를 내뱉었다. 오후에는 예상치도 못한 업무들이 하달되면서 나도 모르게 카톡창에 ‘짜증 난다’를 적고 있었다. 감탄사처럼 무의식중에 튀어나오고, 아이들 간식처럼 잊으면 안 된다는 듯 꼬박꼬박 챙기게 된 것이다.     


나의 불평을 옹호하려고 해 봤다. 가끔씩 누군가에게 힘든 일을 쏟아내고 나면 그 자체로 마음이 편해질 때가 있지 않나. 그런데 지금 나의 불평은 그런 불평과는 ‘결’이 다르다. 나를 누르는 돌덩이가 아니라, 주머니 속 모래알과 같았다. 무엇보다 피곤하다고 불평해서, 짜증 난다고 불평해서 그 피곤과 짜증이 누그러지는 것은 아니었다.     



불평을 그만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위에서 언급한 책에는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기지 마라, 압력이 폭발하지 않게 주의하라, 불완전함을 인정하라, 삶의 기쁨을 되찾아라, 자신과 타인에게 기여하라, 내일로 미루지 마라….      


불평을 그만두기 위해 이렇게 해야 할 일이 많다니 그냥 불평만 하면 안 될까 싶기도 한데(?), 사실 이 모든 해결책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행동해라’.

* 말로만 피곤하다고 하지 말고 행동해라.
 ⇒ 잠자기 전 야식 덜 먹고, 잠들기 전 스마트폰 덜 들여다보고 푹 자자.

* 말로만 짜증 난다고 하지 말고 행동해라.
 ⇒ 일단 일을 시작하자. 하다 보면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끝날 일일 수도 있다. 하다가 버겁다 싶으면 업무 조정을 요청하든지 기한을 더 요구하자.     


이렇게 글로 적으니 뭔가 간단해 보이는데 사실 현실은 복잡하고 변수도 훨씬 많다. 무엇보다 실제 닥치면 머리와 마음은 따로 놀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불평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단호하게 말하건대, 나에게 있어 불평을 완전히 그만두는 건 불가능하다. 솔직히 '아예 불평이 하지 않는 사람은 다소 인간미가 없잖아?' 라는 생각도 한다. 나의 타협점은 ‘불평’에게 내어 준 나의 공간을 차츰차츰 줄여가는 것이다. 대신 그 자리에 흥얼흥얼 콧바람을 불어넣고, 하고 싶은 일들로 차곡차곡 채워나가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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