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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Mar 03. 2021

나도 이제 주인공이 되기로 했다

학창 시절 ‘왜란종결자’라는 책을 읽고 무협지의 재미에 푹 빠졌다. 이렇게 재미있는 장르가 있다니! 집 앞에 있는 도서대여점을 부지런히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권의 무협지 시리즈를 읽고 나서 이 장르는 나와 맞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여러 무협지에는 전쟁터, 경기장 등 싸움의 공간이 등장한다. 주인공을 배경으로 조연들과 수많은 엑스트라가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연민과 애도에 많은 페이지가 할애되지 않는다. 주인공의 상처와 위기에만 집중하고 전전긍긍한다. 당연한 일이다. 책은 주인공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 아니 자주, 주인공보다 엑스트라의 삶에 눈길이 갔다. 내가 그들이라면 어땠을까….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들 하지만, 나는 내가 주인공인 적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내가 접한 소설, 드라마, 영화 속 주인공은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죽을 뻔한 위기를 극적으로 극복하고, 밑바닥에서 시작하더라도 산꼭대기에 우뚝 올라서고야 말았다. 최소한 어떤 한 분야만큼은 비범한 재주를 지녔으며, 매력이 넘치고 사랑스러웠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나도 평범했다. 나름 성실히, 묵묵히 살고 있었지만 뭔가 남들의 카메라 구석에 걸쳐진 삶을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주인공이 되려고, 비범한 사람이 되어보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다. 그럴수록 지치고 힘들어졌다. 그래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들(내가 생각하는 주인공)과 나는 다른 사람인 거야.’


과거 무협지에서 주인공보다 엑스트라와 조연의 삶에 집중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가고, 자꾸 들여다봤던 것 같다. 주인공만 있으면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되겠어. 나는 자처해서 조연을, 엑스트라를 맡기로 했다.     


*


그렇게 마음을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내 안의 숨어있던 나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본인을 주인공으로 두는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본인만 주인공으로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에서 그들이 주인공인 것은, 그들의 카메라 앞에서 내가 조연인 것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본인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요구하는 태도였다.


종종 본인의 행복은 모두가 축하하고, 본인의 슬픔은 세상의 비극으로 알아주길 바라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여러 사람 사이에서 반드시 본인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본인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칭송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나의 상황에 대해서는 일말의 배려도 없을 때, 나에게는 쌀 한 톨의 관심도 없다는 것을 느낄 때, 그들은 되고 나는 안 된다는 태도를 보일 때 약간의 분노를 느꼈다. 나도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고 생각해왔지만, 내 카메라까지 앵글을 틀어 그들을 찍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내 카메라만큼은 나를 중심으로 찍어야 한다.


마음을 바꿔 먹었다. 나도 나만의 영화 속에서 주인공을 하겠노라고. 엑스트라가 평생 엑스트라만 하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처음부터 주인공을 꿰찬 사람도 있겠지만, 주연 배우들도 과거엔 엑스트라와 조연을 경험하면서 성장해 왔다. 다만 주인공이 되더라도 나만 빛나는 사람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럴 능력도 없지만, 그러고 싶지도 않으니까.


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블록버스터급도 아니고, 수백억이 투입되지도 않으며, 누구나 알 만한 배우는 더더욱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마 삼삼하고 담백해서 다소 지루할지도 모르겠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나만의 유머 코드와 소소한 감동이 묻어 나오기만 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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