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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Apr 06. 2021

어른이 된다는 건 쉽지 않다

어릴 땐 그렇게도 나이를 먹고 싶었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 자유로워질 거라고 기대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기대는 현실이 되었다. 듣고 싶은 수업을 골라 듣고, 알바비를 받아 원하는 곳에 돈을 썼다. 이제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더 큰 월급을 받으면 선택의 자유가 더 넓어지겠지.


하지만 취업을 준비하면서 깨달았다. 회사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나를 선택하는 것임을. 자기소개서에 원하는 직무를 써넣었지만 선택권은 없었다. 회사가 배정해 준 업무를 하며,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다는 걸 체감했다. 나이를 먹으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건 아니구나. 어른이 된다는 건, 뭔가 포기할 줄도 알고 그 상황들이 점차 무뎌지는 거구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겼다. 그래도 나는 어른이 되지 못했나 보다. 가족들을 위해 내 삶을 양보하는 게 잘 안됐다. 그래서 몸이 힘들어도 일도 하고 공부도 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아이들은 괜찮냐'를 물어보았다. 옆에 남자 직원에게는 '아이들은 잘 크냐'라고 물어보던데. 괜찮냐와 잘 크냐의 뉘앙스를 잠시 고민하다가, 우리 아이들은 정말 괜찮지 않은지를 걱정했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지면 절로 어른이 될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어떤 상황에도 담담하며, 마음을 잘 통제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여전히 미운 사람들이 존재하고, 남들보다 내가 더 신경 쓰이고, 작은 일에도 몹시 흥분하며, 감정이 정신없이 소용돌이친다. 언제면, 어떻게 하면 철이 들 수 있을까?


그랬던 내가 최근 나의 실수를 깨달았다.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어른에 대한 정의가 잘못되었던 것을. 어른이 된다는 건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었지만, 무언가를 꼭 포기해야 하는 것도, 모든 일에 초연 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


책 [서른이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아이리 저)]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책 속의 나는 세 시간째 유명 타르트 집에 줄을 서 있는 상황이다. 앞에 할머니가 다섯 개의 타르트를 사고 딱 한 개의 타르트가 남았다. 그때 뒤에서 한 여자아이가 타르트를 먹고 싶다고 우는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나는 과연 마지막 타르트를 사서 한 입 베어 물 수 있을까?


앞부분만 읽고 나는 '아, 타르트를 양보하라는 거네.'라고 생각했다. 어른이라면 그래야겠지. 그런데 좀 억울해진다. 세 시간이나 줄을 섰는데. 나는 사도 한 개밖에 못 사는 상황인데. 앞에 할머니는 다섯 개나 사셨다잖아. 할머니가 한 개 양보하실 순 없는 건가.


그런데 책의 내용을 더 읽다 보면 다른 결론에 다다른다.

(p28)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피느라 힘들고, 남이 좋아해 줄 때를 기다리다가 나는 깨닫게 됐다. 늘 그렇게 철이 들어 있다가는 평생 딸기 타르트를 한입도 못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 뜻대로 행동하는 법을 배우자. 좋은 일은 연이어 찾아오는 법이라고 믿으면 당신은 정말 행복해질 수 있다. 이를 실천하는 건 당신이 우아하고 침착하게 하나 남은 딸기 타르트를 한입 크게 베어 물 때 시작된다.



*

생각해 보니 나도, 그 할머니도 타르트를 꼭 양보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그 아이에게 선물을 해 주고 싶은 상황이라면 양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타르트를 기다린 내 시간과, 노력과, 타르트를 원하는 내 마음을 포기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어른이라는 이유로 내 감정과 마음을 무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한동안 새로운 정의를 찾아 헤매다가 내가 생각해 본 나만의 답은 이것이었다. '나와 너를 아는 것.'

나의 자유만을 우선으로 하지는 않지만, 타인만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되, 나 자신도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이 어른이 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는 아쉽게도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가 있다. 같은 걸 두고 경쟁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목적지로 가겠다고 우기기도 한다.

그래서 정의를 좀 수정해보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나와 너를 알고, 서로 맞춰 나가는 과정'이라고. 서로 부딪힐 땐, 어느 누가 무조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정의가 정답일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나에게는 썩 그럴듯해 보인다.

요즘 나는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나도, 남도 많이 알고 싶어서다. 현재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상대방의 의견에 귀 기울이되, 내 생각을 무시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닫는다. 역시 어른이 되는 건 역시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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