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한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후배는 요즘 작은 고민이 있다고 입을 열었다. 듣고 보니 본인의 문제가 아니라, 'A라는 직원의 고민'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 상황인즉, A라는 직원에게는 B라는 후배가 있는데, A는 B의 일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불만이 많은 상황이었다.
'오늘도 그 후배 때문에 짜증 난다고 연락이 왔는데, 뭐라고 반응해 줘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푸념을 늘어놓는 후배의 말에 대답 대신 질문이 먼저 튀어나왔다.
"근데 B가 뭘 잘못한 거야?"
"네? 아... 그냥 이런저런 일에서 문제가 있었나 봐요."
"그러니까, '이런저런 문제'가 정확히 어떤 문제인가 해서."
사실 나는 B와 가깝게 일한 경험이 있다. B는 밝고 싹싹했다. 일이 좀 서툴러도 명확히 지시를 주면 곧잘 해내는 직원이었다. 그래서 B가 누군가에게 욕을 먹고 있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혹시 A의 업무 지시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다가, 내가 모르던 B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설명이 어려운 게... 큰 문제라기보다 좀 사소한 문제들이라서요."
"그러면 그 문제점을 B에게 이야기는 해 봤대?"
"이야기는 하는 것 같던데. 결국 다음 주 일정도 조정했거든요. 아, 맞다. 저 다음 주에..."
우리의 대화는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생각했다. 그 문제들이 고쳐지면 정말 A와 B의 사이는 괜찮아질까. 만약 B가 그 문제점을 고쳐도 A의 불만이 계속된다면….
*
사실 A와 B의 이야기는 몇 년 전만 해도 내 이야기였다. 나는 A이기도 했고, B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한 직원 때문에 회사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 직원 때문에 힘들어서 일기를 썼다가, 그 직원의 이름이 내 일기장을 차지한다는 것조차 싫어 쓴 일기를 찢은 적도 있다. 이렇게 쓰니 그 직원이 엄청나게 나를 해코지한 것 같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더 답답했다.
우리의 관계는 겉으로 슬쩍 보기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많았다. 일단 접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가운데에 놓고 이야기가 전달했다. 그 직원이 자료의 취합을 맡을 때면, 나와 의논 없이 내 파트를 임의로 수정해서 보고를 했다. 후에 상사와 보고서 내용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미처 보지 못한 최종안을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큰 맘먹고 따지려고 갔더니 그 직원은'아, 그거? 급해서 그랬어요.'라는 한 마디만 남기고는 자리를 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직원은 나를 싫어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내가 뭘 잘못했길래? 처음엔 그 이유를 찾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러다가 궁금함은 답답함으로, 답답함은 화와 분노로 변해갔다. 나 또한 그 직원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그의 작은 행동에도 의미 부여를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그의 흠을 찾아낼까 고민했다. 그 직원을 싫어할 만한 타당하고 강력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한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관계는 완화되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로 발전했다. 대부분 그 직원이 나에게 말을 건네 왔다. 이제는 나의 의견도 존중하고, 나를 없는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우리에겐 여전히 벽이 남아 있는 듯했다. 나는 그 직원이 여전히 불편했고 싫었다.
이제는 다른 고민에 빠져들었다. 과거의 일이 이토록 나에게 큰 상처였던가. 이렇게 스스로가 쪼잔하고 모난 사람이었던가. 그렇게 한참을 고민을 하면서 괴로워했다. 그리고 잔존해 있는 그 직원의 단점을 찾으려고 노력을 거듭했다. 그렇게 긴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인정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냥 그 사람이 싫은 거야.
물론 처음부터 시작이 좋았다면 그 사람이 싫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중에 그 사람이 좋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냥 그 사람이 싫다. 어쩌면 그 직원도 나를 싫어했던 특별한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굳이 이유를 꼽자면 내가 방울토마토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그 직원이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서로의 기호의 차이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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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누구를 그냥 싫어한다고 하면 엄청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내가 모두의 입맛에 맞게 행동할 수도 없을뿐더러, 내 행동을 고친다고 나를 싫어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나를 좋아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니까 그냥 싫은 거에 대해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싫은 사람의 잘못을 찾아내고 숨겨진 문제점을 더 파고드는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더 이상 그 직원의 흠을 찾지 않는다. 그 사람이 왜 날 싫어했는지, 내가 그 사람을 왜 싫어하는지 이유를 찾는 것도 그만두었다. 되돌아보니 그 사람을 특별하게 싫어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그냥 싫다는 것을 인정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A는 특별한 이유로 B가 싫은 것일 수도 있다. 그 이유가 해결된다면 B가 좋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혹여나 그냥 싫은 경우라면 마음을 좀 내려놓으면 어떨까. 어쩌면 B 때문이 아니라 B를 열심히 싫어하려는 마음 때문에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지도 모르니까. 그 대신 좋아하는 일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쏟길 바란다. 사실 이 이야기는 A보다 아직까지 싫은 사람에게 태연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