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업무는 숫자를 다루는 일이다. 내가 느끼기에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글자 실수는 넘어가도, 숫자 실수에는 예민하다. 예전에 한 상사분은 말했다. "글자는 하나 틀리면 오타구나 하겠는데, 숫자는 하나 틀리면 전체 자료가 믿음이 안 가."
시스템에서 데이터를 뽑고 몇 차례 확인 작업을 한다. 이 과정은 매~우 지루하다. 합계도 맞춰보고, 큰 데이터 기준으로 정렬도 해보고, 다른 데이터와 비교도 해 본다. 시스템도, 엑셀도, 나 자신에게도 의심을 품는다. 어디 보자, 틀린 곳이 없나.
다행히 구축한 지 오래된 시스템은 틀릴 일이 많지 않다. 이미 여러 차례 검토를 거쳤으므로. 그래서 급하게 요청받은 자료를 대충 검토해서 보냈다. 사실 점심시간 5분 전에 요청받은 자료라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하필, '그 자료'는 문제가 있을 게 뭐람.
알고 보니 누락된 수치가 있었다. 그날따라 잘 쓰지 않던 뷰에서 뽑았는데, 그 뷰에 로직이 잘못 걸려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당당하게 "합계 맞습니다."라고 외쳤다가, "어... 어... 잠시만요." 하고 당황했다가, 조금은 비굴하게 변명과 사과를 늘어놓았다. "아, 최근에 시스템을 수정하는 바람에... 죄송합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숫자로 말하라는 말이 있다. 숫자는 글자보다 명확하니까, 확실하니까. 하지만 나는 숫자 자체도 의심스럽다. 내가 다루는 숫자는 응답 값 혹은 계량 값인데, 이 또한 응답의 오류, (측정하는) 기계의 오류, 입력의 오류 등이 발생한다. 위의 사례처럼 가공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오류가 발생한다. 당당해 보이는 숫자 하나가, 수많은 오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래도 회사에서 믿을 건 숫자뿐이다. 누군가 숫자로 공격해오면 숫자로 맞받아친다. 그리곤 상대방 숫자의 맹점을 파고든다. '아니, 이 통계에는 이렇게 나오는데 증가하고 있는 거 아냐?' / '아니죠, 이 자료에 따르면 감소하는 게 맞아요. 그리고 그 통계는 상위 업체 값만 높아서 평균이 올라간 거예요.'
업무상 숫자 하나에 일희일비하고 예민하지만, 일상에서의 나는 숫자에 둔감하고 무관심하다. 19,690원짜리와 19,990원짜리 둘 다 나에겐 같은 2만 원이다. 과자가 200칼로리든, 300칼로리든 뭣이 중하랴, 맛이 중요한 것을. 대신 책 속에 등장하는 힘 있고 아름다운 문장을 곱씹으며 생각한다. '누가 숫자로 말하래, 글의 힘이 이렇게 대단한데.'
그래도 숫자를 다루며 행복감을 느낄 때가 있다. 바로 숫자가 딱 들어맞을 때. 오류를 찾아내고 수정해서, 행으로도, 열로도, 어떤 항목으로도 쫙쫙 들어맞을 때. 나는 그때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 수학을 좋아했던 이유도 그랬다. 안 풀리는 마지막 수학 문제를 두고 끙끙대다가, 시험 종료 3분 전 튀어나온 답이 보기 중에 있을 때의 그 쾌감이란!
숫자는 사실을 말하면서도 거짓을 말하는 존재다. 종종 숫자는 나를 괴롭히고 의심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숫자에게는 매력이 있다. 숫자란 나에게 희열이다. 그 희열 덕분에, 희열 때문에 오늘도 어찌어찌 숫자와 공생하며 살고 있다.